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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ㅣOUTDOOR

순천 조계산 : 선암사 ~ 작은굴목재 ~ 배바위 ~ 장군봉 ~ 대각암 ~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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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4. 12

 

한 달에 2주는 꼼짝없이 밀실에 갖혀 살아야 하는 업무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매일 자유로울 때는 하루가 어제처럼 그리고 내일처럼 보통의 일상이 반복되었었는데, 20년은 정말 내가 끔찍히 싫어했던 감정의 높낮음이 생기고, 누군가를 싫어하고 증오하며, 미간을 찌푸리며 입에서 욕을 내뱉기까지 하는 기간이 몇주째 이어졌었다. 잦은 출장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갈때 왜 이런 지치는 일상이 반복되는지..

 

조계산 배바위에서 바라본 상사호

 

한 주를 갖혀 지내고 내려온 주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즈음 뒤늦게 조계산 산행으로 이런 지친 정신머리를 새롭게 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일요일 그냥 무작정 남이 운전해주는 차에 실려 구름 속 드러내는 하늘을 바라보고, 오랜만에 크게 소리내며 웃으며 그렇게 순천으로 향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와 다른 일상을 공유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익숙해질 무렵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 조계산은 이른 봄 선암사 매화가 유명하다고 했던가, 구례 화엄사 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봄날의 얼굴을 드러낸 새싹같이 참으로 푸르고 아름다운 절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정감이 갔다.

 

 

 

조계산의 주요 등산코스는 선암사를 시작으로 보리밥집, 작은굴목재, 장군봉, 연산봉, 송광사로 이어지는 "옴"자형 코스가 유명하지만, 오늘은 3시간의 단기 코스로 짜여진 단체산행으로 <선암사 ~ 작은굴목재 ~ 장군봉 ~ 대각암 ~ 선암사>로 원점회귀하는 봄날의 트레킹 코스이다.

 

 

 

<선암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에서 문화유산비 명목의 2천원을 내고 산행을 시작했다. 선암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 이유를 알거 같았다. 울산에서 순천으로 오는 중 비가 내리다가 하늘이 맑았다가 구름이 꼈다가 햇볓이 비치다가를 여러번 반복했었는데, 다행히 순천 하늘은 맑았다. 아니 너무 사랑스러웠다.

 

 

주차장에서 선암사로 가는 길은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봄내음의 푸릇함이 가득했다. 기나긴 겨울의 그 지긋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하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이 그렇게 나를 우리를 반겨줬다. 주차장에서 선암사로 가는 길 왼편으로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시원하게 우리를 반기니, 들머리에서부터 행복한 기운이 물씬 풍겨졌다. 어느 누구 하나 서두를 거 없이 하늘, 계곡, 나무와 인사를 건네며, 이 행복한 순간을 즐겼다. 

 

 

누군가의 소망을 품은 돌들로 둘러싸인 큰 나무를 지나고 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다리 <승선교>가 나온다. 아치형의 돌로 쌓아올린 다리가 참 예쁘다. 특히 승선교 다리 아래에서 찍은 누각 <강선루>는 이 곳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모두 사진을 찍을 만큼 아름답다.

 

 

승선교와 누각 강선루

 

비가 와서 그런지 물살이 조금 거칠다. 그런 날 것의 느낌이 좋았고 조금더 유량이 많아지는 여름에 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혼자서 오거나 함께 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누군가와 온다면 더 행복할 거 같다. 

 

 

 

선암사를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대웅전 길목 지나가던 목마른 나그네의 목을  축일 수 있는 약수가 참 많았다. 늘 목마른 나는 옹달샘 같은 이 약수를 늘 지나침 없이 한 컵 마시거나 물병에 떠 가는데, 오늘은 들머리라 맛만 보기로 하고 컵을 꺼내 마셨다. 목으로 넘어가는 그 시원함이 참 좋다. 

 

선암사

 

<선암사의 홍매화>가 유명하다고 했던가, 이미 그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느지막히 온 우리를 반기는 한그루가 있었다. 참 다정다감하다. 올라가는 길은 동행들의 발걸음이 빨라 날머리에 날래게 사진 한장 찍었다. 화엄사 홍매화가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의 고매함을 닮았다면, 선암사의 홍매화는 그 화려함이 숙종의 빈 장희빈이 떠오른다. 화엄사와 선암사의 홍매화 모두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선암사 홍매화
뒤깐이라고 쓰여진 화장실

 

선암사를 앞에두고 스쳐지나가면 조계산 산행 들머리가 나온다. 우리는 <대각암>을 지나 <작은굴목재>로 향한다. 들머리에서 1.9km 거리에 위치한다.

 

 

가는 길목에 선암사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가 돌에 새겨져 있다. 그리곤 저 멀리 육산의 푹신함을 간직한 조계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둥그러운 그 모습이 인심 좋은 아주머니 상이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조계산 장군봉

작은굴목재까지 가는 길은 작은 계곡물을 건너는 돌, 나무다리가 정겹다. 

 

 

그리고 요즘 자주 눈에 띄는 너덜길, 된비알도 지나가는 길에 보인다. 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쯤 내가 가는 발걸음이 곧 길이고 싶다.

 

 

조계산의 유명한 <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혼자왔으면 저 평상에 누워 쭉 뻗은 삼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과 시원한 하늘을 감상하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을 텐데, 오늘은 단체산행이라 그러지 못한다. 조계산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더 생겼다.

 

삼나무 숲

8부 능선 아래로는 나뭇가지 속살을 간지럽히듯 푸릇함이 돋아나고 있다. 이런 싱그러움이 너무 좋다.

 

 

작은굴목재에서 조계산의 상봉 <장군봉(884m)> 까지는 0.5km 다. 이 곳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가져온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작은굴목재

저 멀리 <배바위>가 보인다. 배바위로 가는 길에 익숙한 산죽이 보인다. 잘 정비된 등로 때문에 산죽을 헤쳐가야하는 산죽탐험시간은 없다. 불현듯 지리산 산죽을 헤치며 웃음짓던 그 때의 내가 그립다. 4월 말 다시 산죽탐험하러 가야겠다.

 

조계산 산죽

<배바위>에 도착했다. 안내판에 나와 있듯이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세상이 물에 잠기는 홍수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커다란 배를 이 바위에 묶어 살아났다는 설이 있고, 신선바위라고 하여 옛날 신선들이 이 곳에서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지는 <2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1설이 마음이 드는데, 와룡산의 새섬봉의 유래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일까.

 

조계산 배바위

 

배바위에 올라가 볼 수 있는데, 밧줄을 타고 올라가면 조계산 자락 사이로 흐르는 <상사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황홀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꼭 배바위에 올라가보길 추천한다. 나는 이런 산과 산사이에 흐르는 강이 흐르는 조망을 좋아한다. 지리산 왕의 강 만큼이나 조계산 상사호도 아름답다. 날씨가 조금만 좋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면이 아쉽다.

 

배바위 조망

 

배바위에서 다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장군봉(884m)>으로 향한다. 장군봉은 그 높이는 낮고 조망은 없지만, 정상석이 귀엽고 아담하다. 정상에는 정상석 외에 <삼각점>도 자리하고 있다.

 

장군봉 삼각점

그리고 조계산의 상봉 <장군봉> 이다. 지리산 바래봉 정상석 마냥 둥그스름한게 정감있고 귀엽다. 

 

조계산 장군봉 정상석

 

<대각암>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에는 드문드문 진달래가 얼굴을 내보인다. 바람에 흩날리는 분홍빛이 참 아름답다. 오름길에 만났던 대각암으로 원점회귀 하지만 조금 다른 길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고, 대나무가 마지막 하산길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준다.  

 

 

 

하산길에 만나는 <대각암>은 정겹다. 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 아래 기왓자락으로 다소곶이 자리잡은 그 모습이 전혀 튀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같다. 

 

대각암

 

마지막으로 조계산 산행의 느낌을 담은 영상 봄내음 가득한 노래 아날로그 선데이(Analogue Sunday)의 "그 봄, 니가 분다"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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