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03. 06.(목) ]

Day 8 : Vigo - Pontesampaio (24.5km, 5.5h)

오늘은 아침일찍 일어나 출발하려고 5시에 알람을 맞춰놨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7시가 넘어서야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세웠다. 건조대에 말려둔 옷가지들을 챙기고 적당히 커피와 빵을 먹고 이리저리 준비를 해서 8시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옆 이틀간 그렇게 시끄럽던 산타마리아 데 비고 대성당을 구경하고는 해안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제까지 20도까지 올라갈만큼 좋았던 날씨는 불현듯 소나기로 바껴있었고 오늘은 아침부터 하늘의 구멍이 뚫렸는지 계속 비가 내렸다.

사실 순례길 루트는 해안가에서 멀어져 산길쪽으로 올라가야 했지만 오늘 비도 오고 어제 못한 바다 구경도 할겸 해안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짜피 오늘 가려고 하는 방향에 레돈델라 Redondella가 있고 Vigo에서 Redondella까지 해안가를 따라 걸어가면 그뿐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그제와 달리 해안가의 사람은 거의 없었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정도 뿐이었다.
이전 비고로 오는 루트에 해안가 루트가 포함되어있어서였을까 순례길이 아님에도 인증석이 하나 서 있었다. 다만 거리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생각보다 포르투갈 해안길에는 거리가 표시되지 않고 방향만 표시한 인증석이 꽤 다수 있었다.


이전 Baiona가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 해안가 느낌이라면 이곳 Vigo는 엄청 큰 크루즈가 정박해있는 상업적인 항구느낌이 났다. 지금까지 본 크루즈 중의 가장 큰 Queen Mary 2호가 수많은 요트 뒤에 서 있었고, 저 멀리 조선소를 연상시키는 중공업 단지의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사실 여기 오기 전 바이오나는 몰라도 비고는 포르투갈 해안길의 아름다운 도시라고 들어왔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아니면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아서 그런가 나는 개인적으로 바이오나가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참고로 비고는 오이스터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역시나 나는 먹어보질 못했다. 휴..




그렇게 쏟아지는 비를 작은 우산 하나로 피하며 해안가를 따라 조금씩 조금씩 걸어갔다. 사실 Vigo를 지나자 거리를 한산해졌고, 비오는 도로를 걷는 사람은 드물었다. 심지어 가는길에 순례자 1명을 만났는데 그마저도 중간에 사라져서 나만 구글 지도에 의지해 레돈델라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중간에 레돈델라 라는 이정표를 발견했지만 이 마을은 레돈델라가 아니였고, Chapela 라는 마을이었는데 여기서부터 Redondella 까지 인도가 사라져서 트럭이 쌩쌩 다니는 도로 한켠을 걸어가는데.. 비도 쏟아지고 옆에서 물은 튀고 내가 여기서 뭐하는 짓인가 현타가 잠깐 왔다.


그러다 별안간 엄청 큰 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 옆에서 도로를 수리하는 아저씨들과 살짝 눈인사를 건네며 인도를 요리저리 잘 찾아서 걷는데 그마저도 중간에 없어져서 또한번 도로가 옆을 혼자서 검은 우산을 쓰며 걸어갔다.

그렇게 3시간만에 나는 Redondella 마을에 진입했고 여기서부터는 순례길에 진입할 수 있어서 인증석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칠줄 알았던 비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쏘나기로 변해 마구 쏟아졌고 그마저도 피할 곳을 찾던 나는 마을 중간 우물같은 정자에서 입고 있던 레깅스를 벗고 바지로 갈아입은 후 그 위해 다시 치마를 입었다. 그러다 빨간 우비를 쓴 순례자 한명을 만났는데 동질감에 웃음이 났고 크게 올라하며 손인사를 해주었다. 중간에 내가 먼저 앞질러 와서 그 분은 어디로 잘 가셨나 모르겠다. 오늘 내 숙소에서는 보지 못한듯 하다.


그렇게 인증석을 따라 마을로 마을로 올라가는데 그마저도 중간에 산길로 들어가서 갑자기 고도를 높였다가 작은 언덕을 넘어 내려가는데.. 아래로 보여야할 바다는 회색조의 안개로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언덕 위에 걸린 수많은 순례자들의 흔적들을 보고 그래.. 나와 같은 맘으로 이 길을 걸은 사람이 많을 거야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산을 내려와 오늘의 목적지 Arcade 에 도착했고 당초 공립 알베르게라고 생각해서 예약을 안했는데 알고보니 공립이 아니라 닫혀 있었다. 띠리리... 어떡하지 어떡하지.. 속으로 걱정을 하다 다행히 바로 앞 마을에 14유로짜리 괜찮은 알베르게를 발견했고 그자리에서 바로 예약을 하고 20분 정도 더 걸어갔다.


Arcade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면 나오는 Pontesampaio 마을은 흡사 프랑스길의 Hospital de Orbigo를 살짝 떠올리게 했는데.. 날씨가 좋았다면 정말 예뻤을거 같다. 나는 급하게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재빠르게 다리를 건넌 덕에 사진을 몇장 찍지 못했지만 그마저도 너무 예뻤다.




그렇게 나는 예약한 Hostel-Albergue O Mesón 에 도착했고 부킹닷컴 9.5의 명성에 맞게 시설이 꽤 좋았다. 1시가 넘어서 도착했음에도 3명 정도의 순례자가 이미 1층 베드를 점하고 있었고, 다행히 나도 아래층 베드를 배정받아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을 건조기에 돌렸다. 세탁 2유로 건조 30분 2유로였다. 문제는 신발인데.. 안에까지 젖은건 40일만에 처음이라 이를 어찌하지 못하고.. 일단 밑창은 건조기를 같이 돌려 대충 말렸는데 내일 당장 큰일이다.




이 알베르게는 Bar도 같이 운영을 해서 거기서 점심으로 포크립과 레드와인을 마셨는데, 와인 너무 맛있어서 2잔 마셨다. 포크립은 소스가 적고 고기냄새가 나서 낫베드였는데 지금 내 배로는 뭔들 안맛있을까... 아무튼 그렇게 배를 채우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자 한 8명이 우루루 체크인 하고 지금은 풀베드 상태.. 처음에 왜 칸막이 있는 베드를 안줄까 했는데 알고보니 저기가 쿼드러플룸 뭐 그런식으로 손님을 받는듯 했다. 그래서 나는 뭐 커튼이라고 있으니 만족하며 살림살이 다 베드에 올려놓고 일단은 숙면을 취하려고 한다.



원래 오늘 계획은 폰테베드라까지 가려고 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실패.. 그래서 결국은 3일만에 산티아고로 가려고 했던 내 계획은 무산되었고 내일부터 3일 더 걸어야 도착할 거 같다. 우선 내일은 공립알베르게가 있는 Briallos까지 27.8km를 가려고 한다.
내일은 그냥 흐리기만 해줘.. 비는 오지 말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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