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21.(금) ]
Day 35 : Santa Irene - Santiago de Compostela (22km, 6h)
눈을 떠보니 자정이 넘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알베르게에는 역시나 나혼자뿐이었다. 그래서 일어난김에 그냥 짐을 챙겨서 비가오기 전에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위해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짐을 챙겨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아.. 생각해본다 어제 내가 알베르게 비용을 지불하고 분명 지갑을 챙겼는데.. 열심히 싼 가방을 다시 풀어 이리저리 뒤지고 뒤지다 결국 못찾고 출발하기로 하는데 갑자기 가방에서 지갑이 떨어진다. 진짜 뭐지.. 나 왜이렇게 정신이 없지.. 정신을 똑바로 챙기자며 마음을 다잡고 1시 30분이 넘어서야 알베르게를 나왔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도로를 따라 걸었을까.. 공립 알베르게가 있는 다음 마을 O Pedurzo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마을이고 순례자들을 위한 거리도 조성되어 있었다. Rua de Peregrino 였던거 같은데.. 벽에 아름답게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속 Camino de Santiago 와 순례자 그림이 가슴 찡하게 느껴졌다.
마을을 지나고 숲길을 계속 걷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괜스레 더 무섭고 그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에 헤드랜턴에 의지해 걷고 있는데 하늘엔 유난히 밝게 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세개의 별이 보였고 찾아보니 쌍둥이자리와 가운데 화성이었다. 사실 붉게 보이는 별이 화성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잘은 모르지만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것이 별들 때문이라고 했던가.. 별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어 지역 주민들이 그곳을 조사했더니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어 이 지역을 빛나는 별 들판의 산티아고인 Santiago de Compostela 라고 불렀다는데.. 오늘 저 쌍둥이 자리와 화성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는 거 같았다. 신기했다.
그렇게 마을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 다시 마을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도로의 지나가는 차가 크락션을 크게 여러번 울리며 지나간다. 아마도 나의 헤드랜턴을 보고 나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나도 뒤돌아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음이 울컥했다.
가는길엔 정말 많은 마을들이 있었다. 성수기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의 바들을 즐기며 신나할까.. 상상에 빠져본다. 성수기의 가장 큰 문제는 숙소대란과 번잡한 까미노겠지만 좋은 점은 아마도 활기찬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을 맘껏 사먹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두 장점이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행히 비는 아직 안왔지만 바람이 너무 거셌다. 날씨앱을 보니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풍속이 10Km/s 다. 다행히 숲길을 걸어가고 있어 바람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산티아고 공항길에 들어섰을때부터 얼굴에 맞닿는 바람이 너무나 차갑고 매서웠다. 그래서 몇번은 마을길로 가지 않고 도로를 따라 걸었으며, 그곳에서 쌩쌩 달리는 몇몇 차들의 소음을 견뎌야하기도 했다.
어느 마을 광장에 도착했는데 바로 옆 순례길에 어두컴컴한 묘지가 있어서 이곳에서 TVG까지는 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던거 같다. 상당히 업힐이었던거 같은데 5시 무렵으로 차가 점점 많아져서 TVG부터는 다시 마을쪽으로 들어와 걸었다.
그렇게 폭풍 바람에 맞서며 걷다가 어느덧 공원같은 공간에 도착했고 큰 숙박시설들이 대거 있는 곳에 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가 100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투숙할 수 있다는 산티아고 초입 알베르게였다. 시설이 참 좋아보였고 주변으로 문화, 음식, 레저시설이 꽤 잘 되어 있었던거 같다.
그렇게 나는 도시의 야경이 반짝이는 산티아고 초입에 도착했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6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조용했고, 뜻밖에 달리기를 하는 러너들이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마주한 큰 조형물.. 왠지 여기에 조각되어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수고했다고 격려를 해주는거 같았다. 큰 조형물에 눈이 뺏겨 놓친게 있었으니.. 나중에 다른 영상을 통해 알게 된 Santiago de Compostela 라고 크게 적어놓은 표지판을 보지 못한것이다. 조형물 쪽 공원으로 들어가 빠져나오는 바람에 못본것이 아쉬웠지만.. 괜찮아 다음에 다른 길로 다시 왔을때 다시 보면 되니까..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고 싶었지만 바람이 너무 매섭게 불어서 차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더 대단한건 이 추운날씨에 반바지 입고 뛰어다니는 이곳 사람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러닝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신시가지를 지나 구시가지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갔다. 다행히 중간에 자판기가 있어서 카페 콘 레체 1유로로 속을 달랬다. 1,500원짜리 종이컵 커피라니.. 요즘 한국 자판기 커피 얼마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바에서 먹는 커피와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커피의 가격이 유사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지도를 따라 걷다 걷다 어느 건물이 대성당일까 유심히 보면서 지나가는데 어마어마한 건물이 참 많이도 보였다. 수도원이라는 곳도 보고 지붕에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르지만 쳐다보니 참 소름끼치게 무서운 건물도 지나갔다.
그렇게 어찌어찌 돌아돌아 대성당과 시청 사이의 있는 광장에 도착했고 정말 아무도 없이 조용함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나는 당연히 대성당이 환한 조명으로 밝혀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없어서 많이 놀랐다. 광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내가 기대한 환호나 감동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했으며 구름낀 새벽에 으스스한 분위기로 35일간 나의 순례길은 끝이 났다.
사실 나는 대성당 반대편 건물이 유명한 호텔인줄 알았는데 호털은 왼쪽편에 공사중인 건물이었고 이곳은 시청이었다. 이곳 공무원들은 참 조망 좋은 곳에서 일하는구나 싶어 새삼 부럽기도 하고.. 돌이켜보니 걸어온 도시 그리고 작은 마을까지고 가장 중심가의 플라자 한가운데에 건물이 있었던거 같다. 그곳에는 늘 3개의 국기가 걸려있었으며 이곳도 역시나 동일했다.
7시가 넘어가니 이곳 시청에 켜져있던 불은 꺼졌고, 혼자 사진을 다 찍고 멍하니 대성당을 바라보는데 다른 순례자 1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사진을 부탁해서 열심히 찍어주고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녀도 오늘 비가 오는 줄 알고 이른 새벽부터 출발을 했겠지.. 그리고 곧이어 어제 Santa Irene 알베르게 앞에서 웅성거리던 중국인 단체팀도 들어와 대성당과 사진을 찍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El Burgo Ranero에서 나에게 5센트짜리 동전을 주며 여기 있는 건물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라고 알려준 La tiendina del Sol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 동전을 얼른 꺼내 대성당과 사진을 찍는데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밤이라서 그런가 사진 초점이 잘 안맞아서 계속 흔들렸다. 그때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엽서 보내준다고 했는데.. 결국 엽서만 사지 못하고 말았구나..
그렇게 날이 밝아왔고 역시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크게 변화는 없었다. 오늘 숙소는 대성당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1시 체크인시간까지 기다려야 했고 10시에 순례자 사무소가 오픈하니까 그전에 잠깐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다. 우선 순례자 사무소의 위치를 파악할 겸 미리 가보았고 역시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서 문을 연 카페를 찾아 아침을 먹기로 하고 둘러둘러 들어가 카페 콘 레체와 베이컨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시켜 맛있게 먹었고 적당히 9시 30분이 넘어 순례자 사무실로 다시 향했다. 이미 나보다 먼저 온 사람 5명이 줄 서 있었고 일찍 온사람에게 준다는 식사권은 받지 못했다. 나는 대기번호 6번이었다. 미리 QR코드에 내 정보를 기입해 저장해놓았고 순조롭게 기본 인증서와 3유로짜리 거리가 적힌 인증서를 모두 수령했다.
그렇게 기본 인증서와 거리 인증서를 받고 결제를 위해 마지막 카운터로 가는데 그 곳에 기념품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나는 가리비 목걸이랑, 마그넷, 뱃지, 그리고 친구에게 줄 순례자 팔찌와 열쇠고리를 샀다 그리고 인증서를 담을 케이스도 같이.. 가격은 42유로가 나왔다. 실제로 내가 걸은 거리는 순토앱 기준으로 812km 222h 였지만 생장에서 출발해 이곳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까지의 공식 인증거리는 779km 이기에 서류에는 시작일자와 끝난 일자 이름 그리고 거리가 적혀 있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 종이 한장이 나에겐 얼마나 큰 행복을 주었던 걸까..
인증서를 받고 순례자 사무실을 나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역시 일기예보는 틀리지 않았어.. 비가 오기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휴.. 그렇게 오갈곳 없던 나는 숙소에 연락했고 일찍 체크인해준다는 말에 숙소로 들어가 4시간 정도 뻗어 잠에 들었고, 빈센트 아저씨가 저녁에 한식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해서 <누마루> 라는 한식당에서 정말 배부르도록 먹었다. 그곳에서 호스텔 방명록에 매번 똑같이 적혀있던 강민구 다녀감의 주인공 강민구씨를 만났고 29살의 열혈 청년이셨던거 같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소주도 마시고 예의바른 청년이 계산도 해주어서 아마도 그분은 복받을거 같다.
한식당 가는길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보이는 전망대 언덕이 있어 올라갔었는데 그곳에 왠 할아버지 조각상이 홀로 의자에 앉아계셨다. 외로워보이기도 하고 나도 시간을 보낼겸 잠깐 같이 앉아 있었다. 그분과 함께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면 나도 좋은 인연을 만나고 마지막 대성당이 보이는 광장에서 같이 환호하고 기뻐하고 싶었는데.. 그런 행운은 나에게 주어지진 않았던 거 같다.
그렇게 숙소에 돌아와 나는 뻗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순례길 마지막날은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게 지나갔다. 내일은 피스테라로 가서 세상의 끝으로 한번 가보려고 한다. 10년전 대학원 방학때 40일간 남미여행을 통해 영화 해피투게더에 나온 장국영의 슬픔을 버리고 오던 등대를 보러 갔었는데.. 내일은 스페인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던 스페인의 끝에 가서 나의 아픔과 고통과 절망과 스트레스와 공허함을 버리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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