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 '21.2.13.(토) 03:30 ~ 17:30 (14시간)
- 산행경로 : 성삼재 > 노고단고개 > 삼도봉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대피소 > 형제봉 > 벽소령대피소 > 칠선봉 > 영신봉 > 촛대봉 > 연하봉 > 장터목대피소 > 백무동
- 백무동 주차후 성삼재 택시이동(4,5만원, 장터목펜션), 연하천/벽소령/세석 14시, 장터목대피소 15시 통과해야(겨울철)
지리산 봄철 산불방지기간 전에 지리산 주능선을 타고 싶어 여러 경로를 검색했다. 들머리, 날머리 고민 그리고 어떻게 차를 회수할 것인가 등의 문제..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지방에 산다는 건 산행지로 가는 것 자체가 힘들다. 늘 자차를 이용하는 나로서는 차량 회수문제로 늘 택시비 지출이 과다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중산리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성삼재~중산리 택시비는 12만원, 실로 거대한 교통비여서 할수없이 백무동에 주차를 하고 성삼재행 택시를 타기로 했다.
전날 미리 장터목펜션 택시를 예약한 후, 새벽 2시40분 무렵 백무동 장터목펜션에 주차 후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이동했다. 미리 말씀하신 택시비는 4.5만원인데 5만원이 넘게 올라가는 미터기를 보고 가슴이 철렁,, 혹시나 예상보다 더 많이 나오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미터기와 상관없이 4.5만원을 현금으로 요구하셨고, 계좌이체 해드렸다.
성삼재의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하늘의 별은 정말 쏟아질듯 많았다. 사람이 꽤 있을거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노고단대피소까지 단 1명도 만나지 못했고, 헤드랜턴이 아닌 캠핑용 크레모아 랜턴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시야가 생각보다 좁아서 중간중간 계단길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 헤드랜턴 하나 구매해야 겠다.
노고단 대피소에 4시가 다 되어 도착하고, 이 곳에서 뒤이어 걸어오시는 어르신 두분을 만났다. 대피소에서 커피한잔 하시고 올라가시는 듯 했고 나는 서둘러 노고단 고개로 향했다. 나중에 삼도봉 이전에 나를 앞서 가시더니 결국 이 두분은 걷는내내 만나지 못했다. 어찌나 걸음이 빠르시던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시간이 넉넉했는데, 혹시라도 벽소령에서 시간이 부족할까 초반에 서둘렀던거 같다. 그래서 삼각대를 세우지 못해 찍은 별사진들은 하나같이 다 흔들려있다. 너무 아쉬웠다. 별사진 찍을 정도의 시간은 있었는데... 다음번에는 조금더 여유를 가지고 걷고 싶다.
노고단고개부터 삼도봉까지는 길이 참 좋다. 능선을 걷는다는건 정말 행복한 발걸음이다. 맑은날 걸으면 조망이 참 좋은데, 오늘은 온통 깜깜해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임걸령을 지났을까, 웃음소리가 들리고 여성 2분이 걷고 계셨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앞서 나갔는데 마지막까지 이분들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 아마 두분이서 즐겁게 주능선을 걸으셨으리라 생각된다.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에 도착한다. 삼도봉은 정말 1년 6개월만이다. 경남, 전남, 전북에 걸쳐 있는 이 삼도봉은 민주지산의 리얼 삼도봉은 아니지만 지리산에 있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빛이난다. 달걀귀신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한장 남긴다. 백두대간을 걷고싶어 시작한 지리산 주능선 산행이 어느덧 첫번째 봉우리의 결실을 맺는다.
어두우니 계속 표지판만 찍게된다. 삼도봉을 지나 500여 개의 잘 정비된 데크계단을 내려가면 남원과 하동 화개사람들이 물류를 교환하며 드나들었던 화개재가 나온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으로 시작하는 조영남의 화개장터 노래가 유명한것 처럼 그 장터 물품 중 일부는 이 고개를 넘어가지 않았을까
화개재에서 토끼봉을 오르는 중에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주능선 어디라도 일출을 볼 수 있지만 조망이 트인 곳에서 보고싶다는 욕심이 앞선다. 해가 뜨기 전에 토끼봉을 지나는데, 명선봉은 아직 좀 남았고... 조금이라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 곳을 찾아본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밑동이 잘린 나무 하나를 발견하곤 그곳에 앉아 일출을 감상한다. 지리산 일출을 제대로 감상한 게 얼마만인가.. 사람 우글거리는 천왕봉, 촛대봉 일출과는 다른 조용하고 멋진 일출이었다.
날이 밝아지고 이제 지리산의 묘미 산그리메가 멋드러지게 보인다. 어느산에서도 볼 수 없는 지리산의 웅장함은 늘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오늘도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자락 사이로 피어오르는 구름안개에 넋을 잃었다.
어느덧 명선봉을 지나 연하천대피소로 향한다. 연하천피소를 얼마만에 본 것인지.. 정말 너무도 보고싶었다. 연하천의 연하(煙霞)는 ‘안개와 노을이 멋진 선경’을 의미하는데, 지리산 종주로를 개척했던 연하반 산악회에서 이곳을 연하천으로, 장터목 직전의 연하봉 일원을 연하선경이라 작명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연하천대피소 벽면엔 그 유명한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의 마지막 구절이 적혀있는데, 이 시를 읽다보면 계속 지리산에 오지말라는 늬앙스가 강해 이 멋진 지리산을 사람들로부터 지키려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니면 혼자만 이 절경을 즐기고 싶으셨거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대피소 샘터엔 벌써붙어 따스한 기운이 설여 물이 흘러넘친다. 코로나로 대피소가 폐쇄되면서 아무래도 사람들이 단시간에 오르기 힘든 이 연하천대피소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오늘은 잠깐 연하천대피소를 전세낸다.
연하천대피소에서 간단히 에너지를 보충하고 이제 삼각고지를 지나 형제봉으로 향한다. 삼각고지에는 작은 건물한채가 있는데 삼각고지지킴터다. 그리고 이 삼각고지에는 음정마을로 내려가는 등로가 있다. 아마 연하천대피소를 지키는 직원들이 이 쪽으로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벽소령대피소에서 등산객 한분을 만났었는데, 나를보자마자 음정마을로 올랐냐고 물어셨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성삼재에서 왔다고 하니 출발시간을 물으시곤 음정마을로 내려가셨다. 보통 음정마을로 올라 연하천대피소, 벽소령대피소를 지나 다시 음정마을 내려가는 코스를 이용하시곤 하나본다.
저 멀리 천왕봉과 중봉이 보인다. 이상하게 멀리 있어도 반야봉과 천왕봉, 중봉은 곧잘 찾을 수 있다. 아무래도 이 셋의 모습이 내 장기기억저장소 한켠에 보관되었나보다.
길쭉하고 두꺼운 두개의 바위 형제봉에 올라선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의 조합인 이 바위를 함양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이란 뜻의 부자암(父子岩)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사실 형제봉은 하동에도 형제봉, 성제봉으로 불리는듯 여러 이름으로 통용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하동 형제봉(성제봉)을 말할때마다 사람들은 이 주능선에 위치한 형제봉으로 오해하곤 하더라.
형제봉을 지나면 멋드러진 포토존이 나온다. 주능선을 걷는동안 여러 사진포인트가 있었지만 나는 이 곳에서 찍은 사진이 제일 예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한다.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는 3.5km 남짓으로 금방 도착가능하다. 벽소령에서 남자 등산객 한분을 만나고, 대피소 직원분과 인사한다. 예전 어디선가 이 벽소령대피소를 지키던 직원이 보고싶었던 여자친구가 수박을 들고 이곳으로 올라왔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인적드문 산중에서 홀로 이 곳을 지켜야 하는 직원들이 좀 외롭기도 하겠다.
벽소령대피소에서 화장실을 잠깐 들렀는데, 화장실 안들렀으면 아쉬울뻔 했다. 화장실 가는 풍경이 정말 일품이다. 멀리서 이 벽소령대피소를 보면 산중에 2개의 건물이 이어져있는 모습인데 능선에 걸쳐있는 대피소 건물이 신기하기도 하다.
벽소령대피소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이제 머나먼 세석대피소로 향한다. 세석대피소까지는 6km 넘게 가야하는데 가는길에 세개의 봉우리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지나간다.
1년6개월 전 지리산에 단풍이 가득할 때 주능선(성중)을 걸은적이 있다. 그때 벽소령을 지나 이길을 걷던 기억이 새록새록난다. 단풍이 흐드러져 정말 멋있었던 거 같은데.. 겨울의 눈없는 지리산은 조금 황량하다.
이제는 천왕봉이 손에 닿을듯이 가까이 보인다. 예전 칠선계곡에서 만난 어르신이 두류능선을 보고 지리산에서 두번째로 예쁜능선이라고 말씀하실때 그럼 지리산에 가장 예쁜 능선이 어디냐고 물었었다. 그때 당연하다는 듯 주능선이 가장 예쁘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래 지리산에 가장 멋진 곳은 역시 주능선이었다.
덕평봉 아래엔 유명한 선비샘이 나오는데, 그 일화가 참 눈물겹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죽어서는 지나가는 이들에게 인사받고 싶어 샘터 위에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나도 이곳 샘터에서 선비가 되어 물 한잔 마시고 지나간다.
덕평봉을 지나면 일곱명의 선녀가 바위가 되었다는 칠선봉이 나오는데,, 7개인지는 잘 모르나 대충 길쭉길쭉한 바위 여러개가 서있다. 이곳 칠선봉에서는 앞쪽 영신봉으로 가는 계단지옥이 보이는데, 촛대봉과 세석대피소는 영신봉에 올라서야 보일듯 하다.
이시기엔 미끌거리는 눈길보다 잘 정비된 계단길이 고맙다. 살짝 삐져나온 바위(좌고대라고 하더군요) 사이로 난 계단길을 올라 지나온 길을 바라보면, 짝궁뎅이 반야봉이 시원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다.
지리산의 중심은 벽소령이지만, 풍수지리에 능한 사람들은 영신봉을 지리산의 정신적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곳 영신봉 제단을 세우고 도를 닦았던 도술가들이 많았다고 하던데.. 그럴줄 알았으면 세석대피소에서 쉬지말고 이곳 영신봉에서 좋은 기운좀 받고 갈걸 그랬다.
영신봉에서는 이제 일출의 명소 촛대봉이 보인다. 예전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일출을 즐겼던 기억이 생생한데.. 언젠가 이 세석대피소에서 다시 1박할 날을 기대해본다.
드디어 세석대피소에 도착한다. 원래 일정은 이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으로 내려가는 거였지만, 연휴 첫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중산리 > 천왕봉 > 장터목 까지 밖에 못가 오늘은 장터목까지 걸어가보기로 한다.
세석대피소부터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세석대피소는 14시, 장터목대피소는 15시까지 천왕봉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데, 오늘은 장터목 하산이라 느긋하게 좀 쉬다가가기로 한다.
촛대봉에 올라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을 조망한다. 오늘 날씨가 정말 파랗고 예쁘다. 14시가 넘은 시간이라 이곳 세석과 장터목사이 구간이 한산하다.
촛대봉은 주능선의 최고 전망대라고 했던가. 동쪽으로 제석봉과 천왕봉이, 서쪽으로 세석평전 위로 토끼봉과 반야봉, 서북능선 등이 보인다고. 여기서 바라보는 천왕봉 일출은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일출보다 멋지다. 이 촛대봉 도장골에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청학연못이 있는데.. 올해는 꼭 한번 그곳을 가보고 싶다.
촛대봉을 지나 연하봉을 가는 길엔 그 유명한 연하선경이 보인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곳을 안개와 구름이 어우러져 신선이 노니는 비경으로 표현했을지.. 심지어 이원규 시인은 그의 시에서 자살하거 같으면 오라고 했을 정도로 이 곳을 극찬했다. 눈 덮인 연하선경을 조금 기대했는데 오늘은 날이 너무 따뜻해서 드문드문 하얀색이 보일 정도다. 사계절 이 곳 연하선경을 보는 것도 지리산을 오는 가장큰 재미다.
아쉬운 마음에 연하선경을 한번더 뒤돌아 보고서는,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연하봉으로 향한다.
이제 천왕봉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인 장터목대피소가 지척이다. 세석부터 이어지는 이길을 혼자 조용히 걷고 있었는데, 연화봉을 지나니 벌써부터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곧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고, 이제는 백무동으로 내려간다. 장터목대피소 도착시간이 15시 전이라 천왕봉 입산통제에는 걸리지 않지만 큰 욕심부리지 않고 처음 계획대로 여기서 하산키로 한다.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꽤 지루하고 무릎이 아프다. 천왕봉을 지나 중산리, 순두류로 하산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생각도 있는데.. 교통문제로 어쩔 수 없다. 그래도 17시30분이 되기전에 하산해서 탐방지원센터에서 그린포인트도 받고 너무 갖고 싶었던 반달가슴곰 깃대종뱃지도 교환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다음번엔 유일하게 종주라고 일컬을 수 있는 역사적인 길 화대를 한번 해보고 싶다. 내 몸을 옥죄면서 하는 등산은 싫어하지만 대피소가 열리지 않는다면 무박으로 해야할터인데.. 조금더 체력을 높이고 사진욕심을 줄여 오는 5월에는 도전해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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