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티아고 순례길ㅣCamino De Santiago/프랑스길 (2025)

(EP.19) 레온 그래 여기 유럽이었지..

반응형

[ 2025. 02. 08.(토) ]

 

 

 

Day 22 : El Brugo Ranero - Leon

 
 

 


 

새벽 4시부터인가 알베르게 안이 시끌시끌했다. 새벽부터 어딜 그렇게 다들 급히 가는지.. 아무튼 6시 30분인가 2층 도미토리가 조용하기에 다들 갔나 싶어서 나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7시에 1층 공동공간으로 내려왔다. 총 몇명이나 투숙했는지는 모르곘지만 3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 한국인 친구는 오늘 레온까지 간다더니 일찌감치 떠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도 간단히 어제 산 빵이랑 그제 저녁 디저트로 챙겼던 오렌지랑 그그제 저녁으로 남았던 삶은달걀 하나로 간단히 배를 채운후 7시 30분 정도에 출발했다. 
 
 

 
 
 

어제 저녁에 얘기했던 하비 아저씨도 비슷한 시기에 알베르게를 나섰는데, 나도 어제 저녁 레온으로 갈까 고민을 심각하게 한터라 이왕 일찍 나온 김에 레온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빠르게 걸었다. 레온 전에 오픈한 알베르게는 만시야에 하나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18km 이기에 레온까지 조금더 힘내서 38km 를 가서 하루더 쉬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레온 숙소값이 비쌀것이 염려되긴 했고 이미 일, 월 2일동안 아파트를 예약해둔터라 3일을 레온에서 보내야했다. 
 
El Brugo Ranero를 지나 Religos 가기 전에 서서히 동이 터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비가 온터라 하늘이 구름한점 없이 맑았고 내 등뒤로 점점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부르고스 이후로 처음보는 여명이다. 이상하게 부르고스 이후부터 시작되는 메세타 평원 구간은 늘 안개로 가득했고 12시가 되기 전까지 하늘 자체를 보지 못했던거 같은데.. 오늘이 마지막 구간이라 그런지 신기하게 오늘은 안개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금새 하늘이 밝아지더니 우측으로 저 멀리 설산이 파노라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핑크색으로 물든 하늘과 저 멀리 보이는 설산 그리고 그 가운데로 쫙 뻗은 아스팔트 도로가 너무나도 이색적으로 아름다웠다. 갈 길이 멀었지만 나는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과 사진을 연신 찍었지만 아무래도 40mm 화각으로는 저 멀리 있는 설산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나는 순례길을 걷고 처음으로 동그란 일출과 마주하였다. 갑자기 등뒤로 따스한 기운이 느껴져 뒤돌아봤더니 나무 사이로 솟아오르는 새빨간 태양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너무나도 강렬한 빨간색이어서 한동안 멍하니 솟아오르는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지평선에서 저렇게 빨간 태양이 솟아오를 수 있는지...  산에서 일출을 참 많이도 봤는데.. 그렇게 도로 한복판에서 솟아오르는 일출은 난생 처음이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Castrojeriz 이후 Castilla 운하를 지나 계속되는 도로구간이 지겹다고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오늘 우측으로 끊임없이 늘어선 설산을 병풍삼아 걸어가니 하나도 지겹지 않았고 너무 예쁘고 황홀 그 자체였다. 그렇게 나는 3시간 50분만에 1차 목적지 Mansilla de la Mulas 에 도착했고 11시였다. 이 마을이 레온 전 오픈한 알베르게 Gaia 가 있는 마을이었고, 사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1박을 하고 일요일에 Leon 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았고 Mansilla에 너무 빨리 도착하기도 했고 얼른 도시에 가서 하루 더 쉬고싶은 생각에 레온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그래서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오픈한 바를 찾았고 다행히 입구에 알베르게 겸용으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열려 있어서 들어가 카페 콘 레체와 빵을 주문했다. 가격은 3.4유로. 직원이 친절하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El Brugo 에서 왔다고 했더니 Leon에 가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는 Buen Camino 인사도 잊지 않고 덧붙여주었다.
 
 
 

 

 
 
 
 
 
 
 

 

 

 
 
 
 
그렇게 Mansilla 마을을 뒤로하고 걸어가는데 Leon이 다가오자 큰 마을이 여럿 나타나고 도로에 차가 많이 다니고 심지어 거리에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점점 도시에 가까워지는구나를 새삼 느꼈다. 그렇게 여러 도시를 지나가고 있는데 날이 따뜻해져 패딩 베스트를 벗으려고 벤치에 잠깐 쉬고 있는데 저 멀리 순례자 아저씨 한분이 다가왔다. 알고보니 나랑 같은 알베르게에서 투숙했던 마이클 아저씨였다. 알베르게에서는 인사를 하지 못했는데 나랑 같이 있었던 한국인 청년 "신" 이랑은 계속 만났던 사이인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캐나다에서 온 마이클 아저씨와 레온까지 이거저거 얘기하며 걸어갔다.
 
 
 

 

 
 
 
사실 원어민과의 대화는 쉽지 않아서 이거저거 얘기하면서 갔는데, 뭔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때는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했고 아저씨와 걸어가는게 좋았다. 그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레온에 도착했고 이미 33km 를 걸은 후였다. 아저씨는 내가 예약한 숙소 주변까지 데려다줬고(내 숙소가 순례길 중심가에 있기도 했다), 숙소 부근 바에서 같이 맥주도 한잔 마셨다. 8시간 넘게 걸어왔던터라 맥주 한잔 마시고 바로 알딸딸해졌다. 그렇게 아저씨와 헤어지고 숙소로 들어와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하고 잠깐 쉬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 주변 음식점을 검색하다 마침 버거킹이 있어 오랜만에 도시의 맛을 즐기기위해 와퍼와 치킨윙을 테이크아웃하고 주변 슈퍼에서 팩와인이랑 샌드위치랑 물이랑 음료수를 사고 숙소로 돌아와 배를 채웠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마침 20유로짜리 2개가 있었기에 나는 40유로를 봉투에 담아 공용공간 책상위에 체크인하자마자 놓아두었는데 9시 30분 이후에 호스트 아들이 그 돈을 수거하기 위해 왔었고 갑자기 내 방 문을 두드렸다. 나는 뭔가 싶어 짜증내며 문을 두었는데 갑자기 돈을 달라는거다. 나는 봉투 책상위에 놓아뒀다고 얘기했는데 봉투를 보여주며 20유로밖에 안들어있다고 그러는거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나 분명 20유로짜리 2개 넣어뒀다고.. 아까 사진을 찍어둘걸 봉투를 공용공간에 두는 거 자체가 찜찜했는데.. 내가 순례길을 걷다보니 여기가 유럽이란것을 깜빡한 거 같았다. 
 
사실 다른 봉투가 하나더 있었는데 그 봉투를 열어서 보여주며 거기는 돈이 맞다고 하면서 내 봉투에는 20유로밖에 없다고 말하는 순간 의심하면
안되지만 그 다른 호실 봉투 안에 20유로짜리 4장이 들어있었는데 1장만 유일하게 꼬깃꼬깃 여러번 접혀 있었다. 사실 나는 카드가 들어갈 정도의 지갑에 지폐를 여러번 접어두었기에 누가봐도 저 한장 내께 분명한데.. 뭐라 말할수도 없고 지폐에 이름을 적어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호스트 아들은 당황하며 20유로만 내라고 애기했는데, 무슨 거지도 아니고 내가 일부러 안낸것같이 보이기 싫어서 그리고 심지어 한국인 이미지에 먹칠할까봐 그냥 20유로 추가로 더 냈다. 사실 20유로가 없어서 50유로 주고 30유로 거슬러 달라니까 10유로 짜리 없다고 됐다고 했는데 더 짜증나서 밑에가서 바꿔오라고 했다. 
 
나 원참 진짜 귀신이 곡할노릇도 아니고 진짜 이 쪼그만한 방 화장실도 키친도 없는 이 방이 평일에는 15유로하는 이 방을 내가 60유로나 내고 투숙하다니 정말 짜증났지만.. 방심한 내가 잘못했지.. 돈을 개봉된 봉투에 그것도 보이는 곳에 놓아뒀으니..  아무튼 레온까지 단숨에 38km를 마이클 아저씨와 즐겁게 오서 즐거웠는데.. 기분이 다 상했다. 시간부자인 내게 20유로는 진짜 큰돈인데.. 젠장..
 
내일 어짜피 다른 숙소로 옮기니까 거기서 다시 재충전하고 길을 떠나야겠다. 그리고 남은 까미노 일정을 정리해봤는데 앞으로는 계속 30km 이상을 쉬지 않고 가야되더라. 33일째 되는 2월 19일 정도면 이번 순례길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거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