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01. 31.(금) ]
Day 14 : Belorado - Atapuerca (31.4km, 7.5h)
Belorado 공립 알베르게는 가격 대비 너무 추웠고 도미토리 시설도 열악했다. 잠자리에 들때쯤엔 라디에이터도 꺼져 창문 사이로 우풍이 심하게 들이쳤다. 도미토리 베드는 12유로, 거기에 일회용 베드시트 1유로 해서 13유로를 지불했는데... 3번룸의 8명 정도 투숙했던거 같은데 유일하게 나만 여자였다. 다들 Villambistia 알베르게로 간게 분명하다. 아무튼 밤사이 침낭을 푹 뒤집어쓰고 자다가 저녁 11시 무렵 엄청난 자동차 시동 코골이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나헤라에서 산토도밍고 가는길에 만났던 2명의 남성 중 한명이었다. 왠지 같이 걷던 친구는 싱글룸에서 잔거 같은데.. 그 이유가 아마도 이 엄청난 코골이에 힘들었던게 아니였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아무튼 밤 11시에 갑자기 전쟁난 줄 알고 놀라 둘러보고는 코골이라는걸 알고 나는 얼른 귀마개를 찾아 귀에 꽂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코골이는 계속 귀에 들려왔다.
그렇게 몇시간을 뒤척이다가 갑자기 코골이가 조용해졌고, 그제서야 나도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6시 30분 즈음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코골이의 주인공이 제일 먼저 일어나 짐을 들고 다이닝룸으로 향하는 것이다. 혼자 정말 잠을 잘잤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그래도 7시 전에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적당히 누워있다가 7시쯤 짐을 챙겨 다이닝룸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곤 산토도밍고에서 먹다 남은 계란 2개와 오렌지주스, 머핀으로 배를 채우곤 7시 30분에 출발했다.
어제 벨로라도 광장 주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덕에 멋진 광장 가로수들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다행히 오늘 벨로라도를 빠져나가는 길이 중복되지 않아 다른 골목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중에 성당 바로 앞에 있는 그 유명한 반짝이는 별하늘 아래 순례자 그림이 엄청나게 큰 벽에 그려져 있었다. 어제 무리하게 이곳을 빠져나가 Villambistia 로 갔다면 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런 생각에 여기서 스탑한 것이 정말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삼각대를 내려 출발과 함께 그 벽화와 사진을 남겼다. 너무 좋았다.
어제의 엄청난 비바람과 다르게 오늘은 공기만 차가웠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치만 너무 추웠다. 날씨 앱에 기온이 0도였던거 같은데.. 이런날 바람이라도 불었다면 정말 추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까미노 벽화와 함께 벨로라도를 빠져나왔고, 하늘의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가뜨니 온몸이 녹는듯했다. 한국에선 늘 태양을 피하기위해 노력했었는데, 왜 유럽사람들이 태양을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등뒤로 따스하게 비치는 태양이 너무나 좋았고 또 감사했다.



벨로라도를 출발하고 1시간쯤 되어 Tosantos 마을에 도착했고 30분도 되지 않아 어제 예약한 알베르게가 있던 Villabitia 에 도착했다. 이 마을 광장에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550km 밖에 남지 않았다는 안내석이 서 있었는데 오랜만에 가리비 안내석을 보자마자 가슴이 뭉클하고 아 내가 벌써 250km를 걸어왔구나란 생각에 대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힘을 내어 삼각대를 꺼내 사진을 찍고 가려는데 뒤에 프랑스 빈센트 아저씨가 연이어 들어왔다. 그래서 내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아저씨가 정말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다 행복했다.


그리고 조금 걷다보니 곧이어 Espinosa del Camino 란 마을에 도착했고, 작은 마을이라 아주 조용하고 문을 연 바나 레스토랑이 었었다. 그냥 산티아고까지 531km 남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곧이어 나오는 548km ... 뭐지? 사실 Villambitia 에서 제일 늦게 출발했던 젊은 청년과 빈센트 아저씨가 나를 앞서갔고 그 뒤로 빈센트 아저씨와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었는데.. 젊은 청년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오늘 날씨는 너무나 맑았고 어제의 비바람이 잊혀질만큼 포근한 날씨가 가득했다. 오늘의 행복을 위해서 어제 그렇게 가혹한 시련을 겪었나 싶었을 정도이다. 오늘 가야할 길이 30km 가까이 되기에 날 좋은날 더 많이 걷고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드넓은 평원을 걷다 이름도 긴 다음 마을 Villafrance Montes de Oca 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오픈한 바가 있는지 두리번 거리다 마을 초입에서 발견, 주저없이 들어가 카페 콘 레체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가격은 4.2유로. 화장실을 갔다 돌아나오는데 벨로라도 알베르게에서 같이 잤던 프랑스인 아저씨도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간단히 눈인사를 하고는 나도 앉아 그렇게 마시고 싶던 커피한잔을 마시고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지만 다시 오픈한 바를 발견할 가능성이 낮기에 깨끗하게 먹고 배를 채웠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있는데 뒤이어 빈센트 아저씨가 바로 들어왔다. 반갑게 손인사를 나누곤 미리 앉아 있던 프랑스인 아저씨와 합석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듯 하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난 엘레나 다음으로 친해진 빈센트 아저씨.. 다수의 외국인을 만났지만 이름을 기억하는 유일한 둘이다. 그러고 보니 엘레나는 어디까지 갔을까.. 다시 보고싶지만 아마도 따라잡을 수 없겠지.. 그렇게 빈센트 아저씨가 먼저 떠나고 나도 가방을 메고 다시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다.
매번 마을을 들릴때마다 성당을 만난지만 늘 문은 꼭 닫혀있다. 까미노가 끝날때까지 한번은 들어가볼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만큼 정말 궁금하다. 그때 론세스바예스에서 유일하게 6시 미사가 있었다고 안내받은날 한번 들어가볼걸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걷다보면 언젠가 열려있는 성당을 만나게 되겠지..
이 마을을 지나고 나니 본격적으로 업힐이 시작되었고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숲길이 시작되었다. 사실 어제 비바람 불때 이 길을 지나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속으로 조금 아쉬웠다. 숲길에서 바람을 피했다면 좀더 즐기면서 걸을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오늘 이렇게 좋은 날씨에 햇살을 피하기 좋은 숲길을 걷는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렇게 언덕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설산이 보였다. 겨울은 겨울인가보다란 생각읻 들었다. 이런 초록초록한 평원과 대비되는 설산이라니.. 저기는 만년설일까? 그렇게 걷다가 만난 하트.. 어제 벨로라도 들어가지 전 마을에서도 하트를 보고 힘을 냈었는데, 오늘도 다시 하트를 만났다. 괜히 또 기분이 설레고 힘이 났다.
그렇게 다시 계속 숲길을 걷다 어느 기념비도 보는데, 영어로 적힌 설명이 없어 아쉽게 뭔지도 모르고 지나가게 되고.. 두가지 언어로 적혀 있는데 하나는 스페인어이고 하나는 대체 어디일까.. 포르투갈어일까.. 그래도 공용어인 영어 정도는 적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까미노 끝나면 스페인어 공부하려고 하는데.. 그 마음이 얼마나 갈지..
San Juan de Ortega 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치만 오랜만에 만나는 숲길이라 그늘도 생기고 나름 즐거웠던거 같다. 무엇보다 걷는 내내 그려진 하트와 힘내라는 문구의 돌들.. 왠지 하트는 그려진게 얼마 안된거로 보여 앞서가는 빈센트 아저씨가 그린게 아닐까 내심 의문이 들었다. 아저씨가 뒤이어 걸어오는 나와 순례자들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한 5번의 하트를 만난 이후 까미노 옆에서 쉬고 있는 빈센트 아저씨를 만났다. 나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아저씨에게 까미노에 그려진 하트 봤냐며.. 정말 러블리 하지 않냐고 물었떠니.. 자기가 그린거라며 크게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길에서 하트를 보고 정말 행복했다고 얘기하고, 이제부터는 내가 까미노에 하트를 그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다음 마을인 Ages 까지 3개 정도 하트를 그리고 온거 같다.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바닥이 생각보다 딱딱했고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아저씨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린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니 빈센트 아저씨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중간에 돌로 만든 Buen Camino 문구도 만났다. 이때가 한 20km 쯤이었던거 같은데, 길에서 만난 하트와 돌로 만든 메시지에 힘이나서 다리 아픈줄 모르고 목적지까지 걸을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나는 길고 긴 숲길의 끝에서 San Juan 마을에 도착했고, 역시나 조용한 아주 작은 마을에 바와 함께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었다. 티비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역시나 닫혀 있었고 옆에 콜라 자판기도 운영을 안하는 듯 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도 다행히 11시에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을 먹어서 그 뒤의 4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거 같다.
그렇게 성당을 보며 벤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마을인 Ages 로 떠났다. Ages 까지 가는 길은 또 숲길이었고 살짝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멀리서 본 설산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 보였다. 사실 엄청 가까이 보이는 건 아니였는데 눈높이에서 마주하고 있어서 더 멋진 모습이랄까.. 이 설산은 마지막 목적지인 Atapuerca 에서 정면으로 아주 멋지게 보였는데.. 지금까지 맞이한 산들 중 가장 멋있는 설산이었다.
그렇게 Ages 마을 도착, 공립 알베르게가 위치하고 또 겨울 시즌 열려있어서 마을이 큰 줄 알았는데, 이전 지나온 마을만큼 작고 아담한 곳이었다. 사실 힘들면 여기 공립 알베르게를 가려고 했는데 2.3km 만 더 걸으면 정말 좋은 사립 호스텔이 있어서 조금더 힘낼 생각하고 16유로에 예약한터라.. 여기도 그냥 가볍게 패스해야할 거 같았다. 사실 여기 마을이 크면 바에서 배를 채우고 가려고 했었는데.. 역시나 문을 연 바나 식당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렇게 Ages 마을도 지나고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 Atapuerca 마을이 보였다. 눈으로 보일만큼 가까운지라 조금만 걸어가면 도착할거 같아 마음이 들떴다. 까미노 절반은 도로 옆 작은 트레일이였고 절반은 도로위를 걷는 거였는데 지나가다 반대편으로 걸어오는 할아버지 순례자를 만났다. 반가워서 Buenas tardes 라고 인사를 하고 그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멋있었다.
그렇게 나는 Atapuerca 마을에 도착했고, 역시나 작은 마을이라 호스텔을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부킹닷컴으로 예약가능하며 리뷰에 엄청난 한국인이 엄지척을 외치는 곳이었는데, 역시나 너무 아름답고 예쁜 곳이었다. 특히나 베드 높이가 높아 앉았을때 머리를 들 수도 있고 암막 커튼도 별도로 있고 키친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그리고 리셉션에 먹을거리를 팔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체크인 하자마자 바로 먹을거리로 레몬캔맥주, 콜라, 사과, 계란2개, 레토르트 식품 해서 8.4유로를 지불했고 짐을 풀고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키친으로 가서 배를 채웠다. 너무 행복했다. 걷고 먹고 자고.. 이 세가지만으로도 하루가 이렇게 짧고 행복한데.. 그동안 집 회사 다니며 편의점 배달음식으로 배채우던 시절..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해야했던.. 입사했을때부터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안정성만을 추구하며 월급쟁이로 살아야 했떤 시절에는 느끼지 못한 행복이었다. 나는 지금 너무나 행복하다. 30일 동안만이라도 아무 생각없이 걷고 먹고 자는 일만 열심히 하고 싶다.
빈센트 아저씨는 Agea 공립 알베르게를 갔는지 결국 여기 호스텔에는 오지 않았고, 어제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자동차 코골이 친구가 우리 호스텔에 왔다. 중간에 열린 바에서 쉬다 온 모양이었다. 근데 나보다 먼저갔는데 어떻게 한번도 걷는 동안 만나지 못했을 수가 있는건지.. 나보다 1시간 늦게 왔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도 반갑게 인사해주는 정 넘치는 친구였고, 샤워하는 동안 음악을 신나게 틀고 노래하는 그의 자유 분방함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오늘은 다행히 옆 방에서.. 옆방이라고 하지만 문하나를 두고 있는 곳의 베드를 선택했으니.. 제발 조용히 오늘밤을 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여기서 한국인 아줌마 아저씨 커플을 만났다. 어쩜 그렇게 사이가 좋으신지.. 나도 머지않아 싸우지 않고 같이 길을 걸으며 여행할 사람이 생겼으면 한다. 아저씨가 성격이 좋으신거 같고 아주머니 말을 잘 들어주시는 마음넓으신 분이신거 같다. 나도 언젠가 저런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
오늘도 열심히 걸었고, 내일도 열심히 걷자. Buen Camino ~
'산티아고 순례길ㅣCamino De Santiago > 프랑스길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EP.14) 메세타 평원은 이런 곳인가 (3) | 2025.02.04 |
---|---|
(EP.13) 까미노 삼총사 (2) | 2025.02.02 |
(EP.11) 역대급 비바람에 날아갈뻔한 날 (3) | 2025.01.31 |
(EP.10)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까미노에서 (0) | 2025.01.30 |
(EP.9) 7시간 바람싸다구 맞으며 29km 걸은날 (2) | 2025.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