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봄 까민호(Bom Caminho)
[ 2025. 03. 02.(일) ]

Day 4 : Viana do Castelo - Caminha (29km, 7.5h)

6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순간 놀라서 끄고 다시 침낭속으로 파고들었다. 6시 30분이 지나니 주변이 웅성해진다. 이 좋은 알베르게 6번방 4베드룸에 나 혼자 조용히 푹 숙면을 했다. 조식은 6시 30분부터이니 나도 이제 씻고 짐을 챙겨서 7시에 1층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알베르게는 텅 비어 있었고 다들 일찍부터 떠났나보다. 식당에 내려가니 한 커플이 있었고 내가 내려오자 다 먹었는지 식당을 나섰다.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곳은 일몰 맛집이 아니라 일출 맛집 알베르게였다. 알베르게 정면에서 일출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일찍 출발하지 않은 덕분에 나는 식당에서 최고의 일출을 감상하며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친절한 호스트 아주머니가 떠나가는 커플의 사진도 찍어주고 이리저리 나에게도 친절한 질문을 해주셨다. 아무래도 여기 알베르게거 포루투갈 해안길의 최고의 숙소인듯 하다. 어제 7유로의 우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간단히 빵과 커피, 씨리얼로 배를 채우고 오렌지 하나를 챙겨서 식당을 나섰다. 친절한 호스트 아주머니가 문도 직접 열어주고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도 해주셨다. 감사했다. 어제 자기전 성당을 어떻게 내려가나 고민을 했었는데 부킹닷컴 리뷰에서 마을을 거치지 않고 까미노로 만나는 길이 있다는 힌트를 얻어 구글 지도를 열었고, 다행히 성당 주변으로 이루어진 산책로가 순례길 진행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우버를 타고 내려가야하나 아니면 10시까지 기다렸다가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가야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너무나 손쉽게 그 걱정이 해결되었다. 역시나 사람 걱정의 90%는 쓸데없는게 맞는 거 같다.
아침 성당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해가 찬란하게 반짝여 바다와 비아나 도 카스텔로 마을을 환하게 비추었다. 어제 일몰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또 일출을 놓칠 수 없지.. 다시 삼각대를 열심히 꺼내 성당과 한컷 그리고 떠오르는 태양과도 한컷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는 성당 뒤쪽 산길을 따라 쉽게 순례길로 내려갈 수 있었다.







오늘도 흡사 제주도와 비슷한 마을을 계속 걸어가는데, 이곳은 이미 순례길 인사같은 봄길(Bom Caminho)였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게 돌담길과 그 위로 핀 목련, 벚꽃,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꽃들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다. 가끔 만나는 주민들은 내게 미소와 함께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고, 몇몇은 내게 <봄 까민호>라고 친절하게 내 길을 응원해주셨다.












신기하게도 길냥이는있어도 주인없는 개는 없었으며, 냥이들도 하나같이 하얗고 뽀얀 털에 통통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댕댕이들은 늘 아주머니와 담배피는 아저씨와 때로는 가족들과 함게 산책중이었고, 가끔은 갖힌 집에서 나를 향해 열심히 짖어대는 XX들도 많았다. 그럴때마다 그래 거기 갖혀서 자유로히 걷고 있는 내가 부러워서 그러겠거니 하며 안쓰럽게 한번 쳐다봐주고 내 갈길을 걸어갔다.




길 중간에 어제 마주쳤던 두명의 여성분이 어제 알베르게에서 같이 하루를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중 스틱을 짚고 걸어가던 한명은 오늘 다리가 많이 아픈지 다리를 절고 있었다. 여리여리한 신체보유자여서 인지 아니면 진짜 리스본에서부터 걸어서그런지 모르겠지만 묵묵히 다리를 절면서도 똑같은 속도로 계속 걸어가는걸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결국 마지막 Caminha 마을에 나와 똑같이 도착했다. 멋진 친구였다.

중간에 높지 않은 산길에 들어섰다가 내려오는데, 제일 높은 지점에서 마을로 내려오는길에 봤던 풍경이 참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중간에 벤치가 보일때마다 앉아서 빵을 먹거나 과자를 먹으며 양말도 말리고 발도 말리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어제 생긴 물집 부위가 아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여분의 양말을 준비해서 발이 축축할때마다 서로 번갈아가며 신었고 쉴때마다 앉아서 두 양말을 함께 말렸다.




마을에는 유채꽃 같이 노오란 들꽃이 가는 길마다 마을 어귀마다 피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더 제주의 봄날과 닮아 있었다. 일부러 직선으로 가도 되는 코스를 굳이 꽃밭으로 돌아가게 만들어놨던데, 이건 진짜 봄의 까미노만을 위한 길인건지 아니면 계절마다 다른 꽃이 이 곳에 피는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내가 본 꽃밭은 노오란 꽃으로 가득차 있었다. 봄은 정말 아름답고 설레는 계절이다. 남들보다 몇 주 먼저 만난 봄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2일만에 다시만날 해안가에 들어서기 전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포르투갈 해안길 처음으로 외식을 했다. 하루종일 햇빛을 피하느라 힘들어서 모든 사람들이 야외 테이블을 차지할때 나만 건물 안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햄버거와 빅사이즈 생맥주, 치킨버거가 싫어서 다른 버거를 시켰는데 알고보니 생선맛이 났다. 근데 그 맛이 진짜 나쁘지 않고 너무 맛있었다. 오랜만에 외식이라 배가 부르지 않아 추가로 딸기와플을 하나 더 시켰는데, 이건 좀 에러였다. 와플은 바삭하고 생딸기가 위에 얹어 있을 줄 알았는데 눅눅한 와플에 딸기쨈이 위에 부려져 있었다. 기대한 것보다 맛은 없었지만 배고프니깐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마을을 빠져나오니 갑자기 펼쳐진 바다.. 파도가 어찌나 거센지 정말 그 높이가 수십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해안가는 붐볐고, 해변뿐 아니라 바다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가 너무나 좋았다. 이 코스가 지금까지 걸었던 포르투갈 해안길 중 단연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다만 30분 남짓 그 길이가 짧았고 그 이후에 갑자기 다시 마을길로 들어가더니 한동한 기찻길을 따라 쭉 이어진 길로 Caminha 마을까지 이어졌다. 그건 좀 아쉬웠다.











오늘 아주 빅사이즈의 맥주를 마신 덕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모든 길이 오픈된 해안길에 마을길이라 1시간 정도를 참다가 갑자기 기차역이 보여서 달려갔는데 화장실 문은 잠겨있었다. 진짜 너무 급해서 반대편 카페에 들어가서 바로 카페라떼 하나를 시키고 커피가 나오기전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진짜 세상 모든 시름이 없어진 채로 나혼자 웃으며 5분도 안되어서 커피한잔을 마시고 웃으며 카페를 나왔다. 휴.. 죽는 줄 알았네..

그렇게 나는 까미냐마을에 도착했고, 예약한 알베르게를 찾기위해 구글지도를 따라가는데, 이 지도가 또 메인 광장쪽으로 가면 오르막, 내리막길이 없이 평지로 갈 수 있는데 빠른 길을 찾은 덕에 언덕을 하나 넘어서 내려왔다. 그 덕에 바다 조망도 보고 좋았지만 괜히 오르막길을 걷는 동안 죄없는 알베르게 욕만 했다. 오늘 같이 걸어오던 두 여자 중 한명은 다른 숙소로 갔는지 한명만 나랑 같은 숙소에 왔고 체크인을 같이 했다. 내일 그녀는 포르투갈 내륙길로 빠져 산티아고로 갈거 같고 나는 배를타고 스페인 해안길을 더 걸으려고 한다.







체크인 할때 아저씨에게 배를 예약하고 싶다고 했는데 친절하게 내일 8시에 배를 태워주시겠다고 한다. 가격은 동일하게 6유로.. 정말 다행이다. 사실 배 못타면 나도 내륙길로 걸어가야 했는데.. 아직 돌아가는 일정도 남아있고 스페인 해안길도 걷고 싶었다. 처음에는 이 길따라 쭉 가면 배가 많다고 막 그러셨는데,, 내가 스페인어도 못하고 포르투갈어도 못해서 걱정이라고 하니까 아저씨가 바로 지인에게 연락해서 내일 태워주시겠다고 하셨다. 유휴.. 다행이다. 6시가 넘어 사이프러스에서 왔다는 여성 2명이 추가로 체크인을 했고 그녀들도 내일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간다고 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이다 나혼자만 가는 건 아니여서.. 그녀들은 어제 Viana do Castelo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하고 아마 오늘이 첫날이지 않을까 싶다. 크레덴셜도 아직 갖고 있지 않았다. 뭐 사립 알베르게에 잘거면 꼭 필요한건 아니니까..
걸으면 걸을수록 포르투갈 해안길 너무 좋다. 특히나 내가 계획한 건 아니지만 계절과 날씨와 해안길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롭다고나 할까.. 지금 이 길을 걸을 수 있어 감사하고, 너무나 행복하다. 처음 프랑스 길을 걸을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불안감이 밀려왔었는데 이제는 이 길을 걸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내가 바라는건 딱 한가지..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