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ㅣCamino De Santiago/프랑스길 (2025)

(EP.15) 메세타는 우울했지만 내가 행복하면 된거다

해추리 2025. 2. 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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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02. 04.(화) ]
 

 

 

 

 

Day 18 : Hontanas - Itero de la Vega (20km, 5.5h)

 

 

 


 

9시가 되자 마자 알베르게 내에 코고는 소리가 진동했다. 오늘의 빌런은 어제 저녁을 함께 먹은 스페인 아저씨였다. 오늘 Hontanas 에서 40km 넘게 있는 Carrion de los condes 에 간다고 하더니.. 일찍 잠에 드셨나보다. 나는 잠이 안와서 나의 완벽한 비서 드라마 한편을 보고는 귀마개를 꼽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6시 즈음 눈이 뜨였고 화장실이 급하게 가고 싶어 다녀온 후 밍기적 밍기적 거리고 있었는데 꿀잠을 주무셨을 스페인 아저씨가 일찌감치 짐을 챙겨서 7시가 넘어 떠났다. 나도 7시 30분즘 주섬주섬 침낭을 정리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칠레노 띤또가 불을 켜주었다. 사실 띤도랑 나만 남아 있는줄 알았는데 샘도 아직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잠자리를 정리하고 8시 알베르게를 떠났다. 몰랐는데 나갈때 발견한 커피와 쿠키.. 혼타나스 산주안 알베르게 호스트 아저씨 너무 따뜻하고 친절했다. 이렇게 아침식사까지 준비해놓으셨을줄은...
 
8시에 나오자마자 바로 옆 성당에서 종이 울렸던가? 안울렸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안개 그 자체였다. 마을을 둘러싼 안개가 해가 뜨면 사라지겠거니 생각했지만 마을을 지나고 일출 시간이 되어서도 해가 주변은 밝아오지 않았다.
 
 

 
 

마을을 나서자마자 국도같은 도로 옆에 작은 오솔길이 있었고, 주변이 온통 안개로 가득한 잿빛이라 또다른 낭만이 가득했던거 같다. 시골 도로라 그런지 차는 많이 지나다니지 않았는데 갑자기 앰뷸런스가 지나가기에 놀라서 차를 봤더니 운전하는 아저씨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를 만나는 사람 누구나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건 아니였지만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면 정말 기분이 좋아서 나도 크게 두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오늘도 지나가는 길에서 빈센트 아저씨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까미노의 하트를 메인으로 노란펜으로 쓴 Buen Camino, Give Love. 그리고 스마일, Muchas Measeta 까지.. 이런 깨알같은 재미 때문인지 순례길을 걷는 내내 덜 힘들고 더 즐거웠던거 같다.
 
 

 
 
 

오늘은 특이하기 마을에 도착하기 전 엄청나게 큰 성당 유적지를 만났다. San anton 이었던거 같은데 일부러 이 성당을 들러서 볼 수 있도록 중간에 순례길이 도로와 접하게 만들어놓았다. 문은 닫혀서 들어가볼 수 없었지만 성당 뿐 아니라 길 위로 아치형태의 석문을 만들어놓아서 그 아래를 통과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옆에 바로 알베르게도 하나 있었는데 여기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정말 멋진 경험이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만난 아주 큰 마을 Castrojeriz, 사실 마을이 이렇게 큰 줄 몰랐는데 가운데 우뚝 솟은 언덕을 둘러싸고 반원의 형태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처음 마을 입구부터 보이는 큰 성당이 너무 아름다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 모양의 석상이 마을 입구에 서있어서 신기하다고 멀리서 생각했는데 갑자기 움직여서 순간 당황.. 알고보니 아저씨가 거기서 담배를 피고 계셨던거 같다.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슬슬 피하며 반대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그렇게 당연히 이 마을도 오픈한 알베르게가 없어서 바도 닫았겠지 하며 크게 둘러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한 아저씨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앞서가더니 한 바로 들어가셨다. 음악을 듣고 있어서 몰랐는데 음악소리를 크게 튼 바 하나가 열려 있었고 나도 들어가 카페 콘 레체와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었다. 가격은 트레스 뒤에 뭐라고 했는데 잘 몰라서 3유로하고 나머지 잔돈을 내밀더니 1유로를 가져가시고 30센트를 거슬러주신듯 했다.
 
 
 

 
 

그렇게 뜨끈한 커피로 몸을 녹이고 있는데 갑자기 Sam 이 들어왔고 나는 인사를 건네며 오늘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고 Sam 은 잘 모르겠다며 이 마을에서 찾는게 더 쉽지 않겠느냐며.. 헛소리를 하기에.. 무슨 말이지..? 하며 영어를 잘 못하나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왔다고.. 그냥 나랑 말하기 싫었던건가 싶어서.. 다 먹고 먼저 바를 나왔다. 아무튼 미국인들이란.. 괜히 대화하다 기분 망쳤네 하며.. 마을을 둘러둘러 나왔다.
 
 

 

 

 
 
마을을 나와서 뒤돌아보니 마을 한가운데 솟은 언덕 주위로 구름과 안개가 걸려있어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가야할 방향에서 큰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설마.. 이 언덕을 넘어가나 싶었는데 .. 설마가 사람잡았다. 까미노가 이 언덕을 넘게 안내했고 1,000m 높이에 경사도 12% 라고 안내되어 있었지만 오르고 보니 800m 대의 작은 언덕이었다. 그 언덕을 올라가는 동안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는데, Castrojeriz 마을 한가운데 솟아있는 언덕 주위로 운해가 엄청나게 깔려있었다. 나는 얼른 삼각대를 꺼내 사진을 찍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내가 찍으려고 하자마자 언덕을 구름이 가려버려서 그냥 하얀 배경에 덩그러니 나만 나와버린 사진이 되고 말았다.
 
 

 

 
 
 
800m 높이의 Punto mas alto 에 오르니 정말 장관이었다. 걸어온 방향으로는 마을을 휘감은 운해가 가야할 방향으로는 바로 200m 고도를 내리는 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메세타평원이 한눈에 펼쳐졌다. 오늘의 날씨가 회색조라 어제의 파란하늘의 평원과는 또다른 풍경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회색과 그린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일줄은... 그럲게 연신 감탄하며 고도를 낮춰 걸어내려가는데 저절로 어깨춤이 덩실덩실 그리고 입으로는 연신 행복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렇게 평원 가운데 난 길을 따라 걷고 다시 또 걷고.. 오늘은 20km 만 가면 되서 맘이 더 편했던거 같다. 다만 어제 30km 를 넘게 걸어서 그런지 어깨랑 다리는 조금 아팠다. 이상하게 평원 길은 분명 건조된 흙길인데 내가 밟으면 신발에 두꺼운 진흙이 계속 묻어 신발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옆에 있는 잔디를 밟으며 떼어내고 걸으면 또 묻고.. 어느새 내 바지 뒷쪽에는 진흙 투성이가 되고.. 아무튼 신기한 흙길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의 목적지 Itero de la Vega 에 도착했고, 어제 빈센트 아저씨가 보내준 벽화를 만났다. 엄청나게 긴 벽화라서 한번에 사진을 찍기에는 다소 힘들었다. 예약한 알베르게는 마을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고 Albergue Hogar del Peregrino 였다. 어제 왓츠앱을 통해 미리 예약한 터라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주머니는 영어를 못하셔서 번역기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칠레노 띤또가 들어와 쉽게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먼저 가방을 내려놓은 방은 싱글룸.. 너무 좋았다. 20유로이긴 하지만 내가 남자였으면 아마도 띤토랑 같이 더블룸을 받았겠지.. 이럴땐 또 성별이 다른게 좋은거 같다. 그리고 나서 슈퍼마켓으로 데리고 가더니 먹을걸 사라고 하셨다. 저녁과 아침은 제공안되는거 같았고 대충 레토르트 식품이랑 맥주, 포카칩, 빵, 사과를 골라서 결제하니 방값 20유로를 포함해서 총 28.15유로가 나왔다. 슈퍼는 5시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니 그때 또 사고 싶은거 있으면 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나는 씻고 짐을 풀고 사진을 정리하고 맥주에 포카칩을 먹고나서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가는데 아까 만났던 Sam이 아랫층에서 나를 불렀다. 예약을 하고 오지 않아서 아주머니가 안계신 모습이었다. 나는 어제 예약했던 왓츠앱을 통해 전화를 걸었더니 한 아저씨가 받았고 역시나 영어를 못하셔서 결국 띤또의 도움을 받아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짜식.. 자기도 영어밖에 못하면서.. 아까 바에서 퉁명스럽기는.. 
 
암튼 여기 알베르게는 인터넷이 느려서 사진업로드도 안되고.. 일기만 쓰고 사진은 내일 다시 업로드해야겠다.
 
오늘의 총평 : "Gloomy Meseta 였지만 내가 행복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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