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ㅣCamino De Santiago/프랑스길 (2025)

(EP.11) 역대급 비바람에 날아갈뻔한 날

해추리 2025. 1. 31.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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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01. 30.(목) ]

 

 

 

 

 

 

 

 

Day 13 : Santo Domingo - Belorado (27km, 7h)

 

 

 

 


 

 

이상하게 오늘 투숙한 사람들은 7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8시 30분 체크아웃인데 이사람들은 대체 무슨생각인거지.. 밤새 옆 침대 한국인 남성 코골이에 잠을 못이루다 결국 7시 30분에 공용공간으로 나와 어제 사둔 요거트와 삶은 달걀을 먹고는 짐을 챙겨 8시 30분에 알베르게를 나선다. 

 

나서기전 어제 늦게온 프랑스 아저씨와 잠깐 대화를 했는데 어제 나바레트(Navarette)에서 40km를 걸어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에 왔다고 했다. 굳이.. 40km를... 뭐 그분의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숙소를 연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렇게 걸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다 다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나는 제일 먼저 알베르게를 나왔고 프랑스 아저씨가 비바람 친다고 알려줬기에 치마에 바람막이에 모자에 가방커버에 완전 무장을 하고 나왔다. 다행히 도시는 건물들로 둘러쌓여 있어서 비바람이 세차진 않았지만 산토도밍고를 벗어나자마자 나무 한그루 없는 벌판에 비바람을 제대로 맞으니 정말 날아갈듯 추웠다. 솔직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아 신발이며 옷이며 다 젖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서 솔까말 몇번을 휘청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허허 벌판을 지나 첫번째 마을에 그래뇬(Granon)에 도착했고 역시나 비를 피할겸 열린 바를 찾아 둘러봤지만 역시나 비바람에 덜덜떠는 순례자를 받아줄 식당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쉼터에서 바람을 피하며 어제 산 피칸파이를 아그작아그작 먹었다. 추워서 그런지 가만히만 서있어도 화장실이 어찌나 가고 싶은지.. 열려있는 곳은 없고 오늘도 나는 허허벌판에 어글리 코리안이 되어 안보이는 곳에서 노상방뇨를 했다. TMI 같지만 진짜 왜 공중 화장실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얻을게 없이 첫번째 마을 그래뇬(Granon)을 떠났다. 어제 산토도밍고에서 자지 말고 이곳 그래뇬까지 왔었어야 할걸 살짝 후회도 되었다. 그래도 어제 오후에는 소나기가 쏟아졌고 또 그래뇬까지 걸었다면 비를 맞았겠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비바람이 치는거에 비하면 괜찮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들면서..

 

그래도 산토 도밍고 알베르게가 너무 훌륭해서 좋았던걸 생각하면.. 아니다 한국인 투숙객의 코골이에 힘들었던걸 생각하면.. 모르겠다. 어제의 내가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오늘의 나는 이런 힘듦을 감수해야하는거 아닐까..

 

 

 

 

 

 

그렇게 그래뇬까지 무사히 잘 통과했는데 그 뒤로 폭우를 피하느라 아래만 보고 갔는지 나는 이상한 마을로 향했고 결국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야 내가 잘못된 마을로 왔다는걸 알게 되었다. OMG... 원래 가야할 방향과는 산하나를 두고 있었고 어쩐지 이 마을로 향하는 길 내내 어떠한 까미노 표식을 만나지 못했더랬다.. 괜히 신발에 붙은 진흙만 계속 떼어내며 신경쓰느라 정작 내가 가야할 길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듯 하다.

 

 

 

 

 

그렇게 나는 Villarta-Quintana 란 마을에 도착했고 도착하고 나서야 이곳이 까미노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원래 길로 돌아가려면 그래뇬까지 돌아가야 했지만 5km 정도를 돌아가는 바보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도를 보니 옆에 있는 산 하나를 넘어가면 원래 까미노로 돌아갈 수 있어서 나는 산하나를 넘기로 마음먹었다. 뭐 말하자면 말이 산이지 언덕 정도... 한 400m 짜리 언덕이었던거 같고 다행히 올라가는 길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까미노로 돌아온듯 하다. 

 

 

 

 

 

 

그렇게 돌아온 까미노에는 엄청나게 큰 이정표가 있었고. < Castilla y Leon > 이라는 이름과 함께 여기서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의 마을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그 옆 산티아고 이정표 바위석은 쓰러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까미노로 돌아왔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Villambistia 까지는 5km가 더 멀어져 있었다. 이미 절반정도 왔을 거리인데 실제로는 3분의 1밖에 오지 않았다니.. 허탈하고 또 심적으로 부담이 왔다. 사실 그냥 벨로라도까지 갔으면 되었는데 괜히 Villambistia 숙소에 예약문자를 보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빨리 이 폭풍어린 까미노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다음 마을에 도착하는데.. 이상하게 마을 입구로 길이 나있지 않고 공사중인지 한창 둘러서 마을로 들어가게 되어있었다. 오늘 진짜 날씨도 이런데 길까지 왜이러냐.. 싶어서 짜증이 났다. 이렇게 하루만에 감정이 행복에서 절망으로 변할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나는 공사중인 도로를 돌아서 Redecilla del Camino 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마을입구에는 순례객 동상이 예쁘게 서있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당장 삼각대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을테지만 오늘 이 비바람속에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아쉬움을 남기고 바로 패스..

 

 

 

 

 

 

사실 오늘 벨로라도에 도착하기까지 작은 마을 4곳 정도를 지나쳐왔는데.. 비바람 때문인지 제대로 보고 즐길 여유가 없었던 거 같다. 다들 작은 마을들이라 크게 특색이 없었고 특히 열린 바나 식당이 없어서 시간을 보내고 온 곳이 없어서 더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 빌로리아(Viloria) 마을 한 알베르게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561km, 레온까지 243km, 부르고스까지 61km 남았다는 표식을 해놔서 새삼 가슴이 뭉클했다. 산티아고까지 이제 절반이 된다니.. 지금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이 7~8일 된 거에 비해 나는 쉬며놀며 13일째지만 그래도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증명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드디어 벨로라도 전 마을인 빌라메이어(Villa Mayor)에 도착했고, 이제 6km만 더 가게되면 벨로라도에 도착한다. 사실 오늘의 목적지는 Villambitia 였지만 이미 온몸이 녹초에 22km, 6시간을 넘게 걸어서 내적으로 고민중이었다. 다리는 천근만근으로 너무나 아팠고 이제는 오른쪽 발목 아킬레스건까지 아파왔다. 내가 이렇게나 나약한 사람이었던가.. 지금까지 시간에 쫒겨 단기 트레킹만을 주로 해와서 나 자신을 몰랐던걸까..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러다 가는길에 그려진 하트를 보고 또 힘이 나서.. 나도 옆에 파이팅 Way to go 라고 적고 싶었는데 마땅히 사용할 스틱이나 막대기가 없어서.. 아쉽지만 마음으로 나마 이길을 지나가는 모든이들에게 큰 힘이 되기를 응원했다.

 

 

 

 

 

 

그렇게 나는 출발한지 7시간만에 벨로라도에 도착했고, 머리로는 오늘의 목적지인 7km 를 더 가야한다고 나를 다그쳤지만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래서 가만히 마을 벤치에 무아지경으로 앉아 쉬다가 옆에 열려있는 El Corro 알베르게가 보였다. 웃긴게 알베르게를 보자마자 내 다리가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걷고 있더라.. 알베르게는 닫혀 있었고 왓츠앱 연락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사실 어제 이미 연락했으나 최종 로그인 날짜가 2024년 11월이서.. 다시 연락하는건 포기하고 어쩔까 고민했는데 옆에 열린 문이 있어 들어가보니 나를 제쳐간 젊은 남자 아이가 소파에 앉아 40분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그옆 테이블에서 앉아서 기다리는데 오늘 아침 만난 프랑스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리셉션 언니가 자리를 비웠다고 3번 룸에 자리잡으면 된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배가 고파 동네 마실겸 식당을 찾았는데.. 여기 유튜브에서 봤던 유명한 광장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기에는 이곳 광장에 둘러앉아 와인마시며 수다떠며 쉬는 장면이었는데... 식당 문은 다 닫혀 있었고 광장 가운데 나무들은 한없이 황량하기만했다. 참고로 성수기에도 이 나무들은 그냥 가지만 앙상하다.

 

 

 

 

 

 

 

 

그러다 유일하게 열려있는 식당을 발견하고는 들어가서 3가지 타파스와 비뇨 블랑코를 한잔 시켜 배를 채웠다. 타파스가 하나같이 맛있었던거 같다. 스페인은 음식이 맛있어서 너무 좋다. 

 

 

 

 

 

 

알베르게 시설은 딱히 좋지 않았고 2층 베드여서 1층에 자리를 잡았지만 머리를 들 수 없었다. 사실 구글 리뷰보고 여기 시설이 좋지 않아서 Vilambtia 알베르게에 미리 예약을 한건데.. 암튼.. 어쩔수 없다 열려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1인 베드 12유로에 베드시트 1유로 해서 13유로를 냈다. 사실 1인실이 17유로여서 고민을 했었는데 굳이 알베르게에 잠만 자는데 5유로를 더 줄 필요가 있을까 해서 그냥 말았다. 

 

오늘 투숙객은 어제 산토 도밍고에서 함께 왔던 프랑스인 아저씨와 영어 잘하는 젊은 남자, 그리고 어제 길에서 만난 스페인어 쓰는 아저씨 2명.. 유일하게 나만 여자네.. 아마 그래뇬에서 출발한 한국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내가 예약한 그 알베르게로 갔을거 같다. 한국인은 숙소에 예민하니까 ㅋㅋㅋㅋ 아무튼 오늘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지 못해서 아쉬었고 지나온 길들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해서 더 아쉬웠지만 내일은 부디 잔잔히 비바람 없이 온전히 걸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씨이길 바라본다.

 

13일차도 열심히 걸었다, 부르고스에서 쉴 날을 기대하며 내일도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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