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까미노에서
[ 2025. 01. 29.(수) ]
Day 12 : Najera - Santo domingo (21.5km, 5.5h)
아침부터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유독 강했다. 한국인 아줌마 아저씨의 일찍부터 준비하는 소리다. 어제 저녁부터 감자를 전자렌지로 삶는다고 그러더니 오늘 아침도 전자렌지로 감자를 삼고 있다. 그럴거면 그냥 가스렌지를 활용하지.. 아니다 여기 알베르게에서 가스렌지를 못본거 같다. 아무튼 유난히 한국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늘 먹는거에 예민하신거 같다. 독일인 친구도 일어나더니 화장실을 가는 듯 하다. 지금 시간은 6시 30분, 어쩔 수 없이 나도 몸을 일으켜 12일차 까미노 준비를 한다.
화장실을 다녀와 어제 먹다 남은 볶음밥을 전자렌지로 돌리고 그제 로그로뇨에서 먹다 남은 문어 통조림을 볶음밥에 부어 아침밥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리고 자리를 정리하고 7시 30분 알베르게를 나선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세상이 컴컴하다. 알베르게 주인은 크디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다닌다. 스페인 어느마을을 가도 산책할때 강아지 한마리쯤은 데리고 다녀야 스페인사람이구나 싶다. 견종도 어찌나 다양한지.. 내가 본 강아지만도 보더콜리, 불독, 닥스훈트, 푸들 등 정말 다양하다.
아무튼, 어두컴컴한 마을을 뒤로하고 오늘은 산토 도밍고 나헤라에서 22km 떨어진 마을로 향한다. 유난히 어제저녁과 오늘아침 부산스러웠던 한국인 아저씨 아줌마는 그래뇬으로 간다고 한다. 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가 스페인인지 한국인지.. 까미노를 다니는 동안 외국인 보다 한국인을 더 많이 본듯 하다. 사실 네팔에 살때 한국인이 많이 그리웠는데 막상 스페인에서 한국인을 너무 많이 만나니까.. 복합적인 감정이 드네... 나도 내 맘을 모르겠다.
그렇게 작은 언덕을 오르니 내 등뒤로 하늘이 점점 붉어지더니 아름다운 시간이 왔다. 어제는 늦게 출발해서 이시간의 감동을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은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아름다운 하늘을 만나게 되었다. 행복했다. 뒤돌아보니 한국인 아주머니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다. 아침을 드시고 바로 발걸음을 재촉하셨나 보다. 아무튼 하늘이 너무너문 아름다워서 계속 사진찍고 동영상 찍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사실 오늘 가는 길의 정보는 전혀 모른다. 걷다보면 작은 마을이 나올거고, 주변은 온통 포도밭이겠거니.. 그런 생각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 걸었던 30km 보다 적은 22km 를 가니까.. 천천히 즐기면서 걸어가면 되겠구나 내심 안심이 되고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첫번쨰 마을을 만났다. 그 마을의 이름은 Azofra. 회사다닐때 매일 아침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셨던터라 카페인이 너무 끌렸던 아침이다. 제발 이 마을의 바가 열려있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그러다 발견한 Var Servilla 다행히 불은 켜져 있었고 아저씨가 한 남성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가서 카페 콘 레체와 포장된 머핀을 주문했는데 옆에 보니 초콜릿을 품은 빵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여기서 먹겠다고 빵을 주문했고 물이 없었던 나는 추가로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금액은 6유로 아무렴 어때.. 길을 걷다 바를 만난 거 자체가 행운이고 즐거웠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이 마을을 흥겹게 떠났다.
사실 나는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을 싫어 한다. 오히려 크로아상이나 담백한 음식을 좋아한다. 커피도 사실 라떼나 카푸치노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였다. 그러다 네팔에 살면서 아이스 커피를 먹기 힘들어지자 천천히 카페라떼로 입맛이 기울어졌고... 카푸치노는 기술적 한계 때문인지 네팔에서 먹지 못해서 늘 아쉬웠는데 아무튼.. 2년간 카페라떼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초콜릿.. 단거를 유난히 싫어하는 나지만 까미노를 걷다 만난 뱅오쇼콜라에 꽂혀서 이제는 바에서나 마트에서 찾게된다. 그리고 피칸파이까지.. 내가 그동안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았었나 보다 초콜릿으 생각나지 않았다는게..
그렇게 나는 첫 번째 마을인 Azofra를 지나 포도밭을 걷다가 쉼터에 앚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스페인 학생들이 우 루루 내쪽으로 몰려왔다. 아마도 현장학습을 온 거 같았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조금씩 그룹을 지어 내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한 아이가 나에게 Buenos Dias!! 라고 크게 외쳤다. 나도 반가워서 Buenos Dias 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귀여운 자식들..
그렇게 20여 명의 아이들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나도 쉼터에서 일어나 다시 까미노를 걸었다. 왠지 나도 그네들의 무리가 된 듯 했다. 트레킹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찍을때 늘 빈 공간만 찍기 아쉬웠는데 오늘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아 너무 좋았다.
그러다 2명의 여학생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논라했다. 나헤라에서 시작했고 산토 도밍고로 간다고 하니 자기들도 오늘의 목적지가 산토 도밍고라고 한다. 그럼 오늘 나의 까미노 동행자는 이 애기들이겠구나.. 나름 즐거웠다. 그리고 어제 만났던 2명의 남성 친구들도 내 뒤를 따라왔다. 스페인어를 쓰는걸 보니 아마도 스페인 아니면 남미 친구들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마을인 Ciruena에 도착했다. 걷는 내내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입이 귀에 걸리고 너무 행복했다. 오늘 걷는 길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걷는 내내 최고로 행복했던거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 까미노를 걷게 된게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최고의 선택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행복했고 그럼 된거다.
나보다 앞서갔던 스페인 애기들은 Ciruena에서 휴식을 취했는지 내가 도착할 무렵 다시 출발하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나도 쉬지 않고 그들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자 또다른 논밭뷰가 나왔고 오르내리는 작은 언덕 때문인지 몰라도 내려다보는 뷰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앞서가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영상을 찍고 또 찍고.. 아름다웠다 이 길이.. 까미노 시작 이후 최고의 구간이었다 지금까지는.. 앞으로의 길은 어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걷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하늘은 맑은데 비가 왔다. 얼른 가방 커버를 씌우고 우산을 썼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우산이 날아갈 거 같았지만 꼭 붙잡았다. 그렇게 나는 오늘의 도착지 Santo Domingo에 도착헀다. 멀리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나는 스페인 얘기들과 마을에 도착했고 13시 무렵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어제 저녁에 미리 예약한 Santo Domingo 유일하게 열린 알베르게 < Cofradia del Santo > 였다. 나와 같이 걸었던 한국인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스페인어를 쓰던 남성 2명은 다음 마을인 그래뇬의 공립 알베르게로 간듯 했다. 이곳에 체크인을 한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알베르게는 정말 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개관시간은 13시부터라는 한국어 문구가 적혀있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방문하면.. 스페인어 영어 등등 다음으로 유일하게 한국어가 아시아언어로 적혀 있었을까... 그렇게 체크인을 했고 한국어로 된 안내종이를 받았다. 친절한 리셉션 아저씨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13유로를 지불했다. 그리고 내가 이 알베르게에 체크인 한 첫번째 사람이었는지 14호실의 1번 베드를 제공받았다.
알베르게는 단층침대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넓고 너무 좋았던거 같다. 혹시나 오늘 체크인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내심 기대를 했는데 15시 무렵 한국인 커플 2명이 들어왔고 그 뒤로 외국인 남성 1명이 들어왔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나 혼자 이 큰 알베르게를 차지한단 말인가..
체크인하자마자 깨끗하게 씻고 주린 배를 채우러 마을 초입에 봤던 마켓 Dia 로 가서 먹을걸 사왔다. 전자렌지로 데울 까르보나라 와인 팩 3개, 산미구엘 맥주 1개, 요거트 4개, 피칸파이 3개, 물, 올리브 정어리, 계란 6개로 총 15유로를 지불했다. 그리곤 오랜만에 배부르게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12일차 산티아고 순례길은 마무리되었고, 이제 곧 해가지고 잠자리에 들 예정이다. 오늘이 까미노 걷는 기간 중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거 같다. 앞으로의 날들이 오늘만 같기를..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