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ㅣCamino De Santiago/프랑스길 (2025)

(EP.9) 7시간 바람싸다구 맞으며 29km 걸은날

해추리 2025. 1. 29.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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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01. 28.(화) ]

 

 

 

 

 

 

 

Day 11 : Logrono - Najera (29km, 7h)

 

 

 


 

 

 

 

 

로그로뇨에서 2일을 쉬었더니 아침부터 눈이 떠지지 않는다. 그래도 순례객은 적어도 8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부시시 눈을 비비고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겨 11일차 길을 떠난다. 시간이 많으니 도시에서 이틀을 쉬어도 되고.. 사실 이틀을 쉴 생각은 아니였는데 토요일 로그로뇨의 숙박비가 너무 비싸 적당한 곳에서 좀 쉬고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싼 일, 월 2일을 아파트 숙소에서 쉬며 재정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문제는 계속 도시에 도착하는 요일이 앞으로도 토요일이라는거다.. 흠.. 되도록 일요일부터 수요일 사이에 도착하면 도시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박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해질텐데.. 조절하려고 해도 앞으로 걸을 길의 알베르게가 많이 열려 있지 않아 아무래도 다음 도시인 부르고뉴도 토요일에 도착할 듯 하다. 휴.... 

 

 

 

 

 

9일차 토요일 로그로뇨에서 숙소 체크아웃을 11시에 하고 아파트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카페와 광장을 누비다가 신기한 광경을 목겼했다. 로그로뇨 광장이었던거 같은데 갑자기 군용 헬기 서너대가 연속으로 날아가고 광장에 군악대의 연주소리가 들리는거다. 처음에 군용헬기가 지나갈때 정말 전쟁이라도 나는건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굉음과 그 위세에 많이 놀랐었는데.. 알고보니 2024년이 헬기부대가 생긴지 50주년이라는데 아마도 축하행사였던거 같다. 근데 2024년이 50주년인데 왜 오늘 행사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스페인어를 못하는 내가 물어볼 곳은 없었다.

 

 

 

 

 

아무튼 숙소 이동시간에 어쩌다 광장에 있어서(사실 광장이 무료 와이파이가 있어서 앉아있었지만)  이런 행사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다니.. 밖에서 덜덜 떨었지만 뜻밖의 재미있는 구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헤라 호수? 저수지? 에 도착했고 생각보다 잘 정비된 산책로가 인상적이었다. 갖혀있는 물과 다르게 세차게 부는 바람때문에 저수지에 파도가 일렁였다. 그만큼 오늘 정말 바람 싸다구 제대로 맞은 날이다.

 

 

 

 

 

 

 

 

 

 

 

호수를 좌측에 두고 반바퀴 돌며 까미노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그 유명한 청솔모를 만났다. 사람을 진짜 좋아하는지 아니면 먹을걸 바라고 이러는 건지.. 이 겁없는 청솔모가 계속 내 주위를 알짱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청솔모를 본건 처음이었던거 같다. 하얀 배를 겂없이 내밀며 걸어오는 귀염둥이를 순간포착하기 위해 사진을 많이도 찍었는데.. 아쉽게도 두발로 서서 하얀배를 내민 모습은 담지 못했던거 같다. 

 

 

 

 

 

 

 

 

그렇게 저수지 절반쯤을 걷고 나서부터 나헤라에 도착할때까지는 황량한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진거 같다. 아마 성수기에 온다면 눈부신 태양 아래 초록초록 빛나는 포도밭이 환상적이겠지... 나는 나무가지만 남아 바닥에 붙어있는 포도나무 밑둥과 가지만  6시간을 계속 보았던거 같다. 

 

 

 

 

 

 

 

저수지를 지나고 오르막길을 넘으면 고속도로가 나오는데, 저 멀리 큰 황소 한마리가 우뚝 서있다. 사실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면 황소 석상이 있는걸 아는데(가보진 않았지만).. 이곳에서도 산 정상에 우뚝 한 마리가 서 있다. 이곳의 상징인가.. ?? 그렇게 칼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걷고 걷는데.. 모자가 몇번이나 날아갔는지 모르겠다. 

 

 

 

 

 

 

가헤라 저수지를 지나 걷다보면 어느새 나바레트(Navarette) 마을이 나오는데, 가는길에 Don Jacobo 에서 제작한 포토스팟이 있었고 거기에는 산티아고까지 576km 남았다는 표식이 있었다. 600km 대를 본게 얼마되지 않았는데, 벌써 500km 대로 남았구나 생각하니 살짝 아쉬웠다. 이대로 까미노가 곧 끝나버릴거 같았다. 이 순간을 더 즐겁게 즐기고 담고 걷고 싶은데...

 

 

 

 

 

 

 

 

10시 30분이 넘어 도착한 터에 혹시라도 열린 바가 있나 두리번 거렸다. 근데 역시나 이 작은 마을의 문은 꼭꼭 닫혀 있었고, 광장 벤치에 순례자 2명만 우두커니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커피 한잔 마실 여유도 없이 나는 이 마을을 통과했다.

 

 

 

 

 

 

 

또다시 마을을 벗어난 까미노는 양옆으로 펼쳐진 끝없는 포도밭으로 가득했다. 성수기에 왔으면 정말 햇볕에 타 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주변에 어느하나 큰 나무, 건물이 없었다. 그 덕에 나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길 없이 내 얼굴, 온몸으로 맞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중간에 벤토사(Ventosa) 마을 옆을 지나는데, 마을까지는 1km를 추가로 걸어 들어가야해서 나는 굳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마 들어가면 와이너리가 있을거 같긴 한데.. 이 센찬 바람에 덜덜 떨면서 굳이 와인을 먹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계속 화장실이 가고 싶었고, 잠시라도 걷지 않으면 정말 바지에 쌀 거 같은 수준이었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나헤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6시간 상당을 추위와 더불어 방뇨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결국 나는 나헤라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것도 나헤라 안내 표지판을 발견한 후 40분 이후에 일이다. 나헤라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은 여러 벤치가 있는 쉼터 바로 앞에 있었는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거다. 알고보니 여기서 마을 입구까지 한참을 더 걸어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나헤라 마을에 도착했고 사전에 메일로 예약한 알베르게인 Las Panas 의 위치를 찾아보는데 마을 입구와 완전 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숙소로 가기 전에 식당을 들러 배를 채우고 들어가 쉬자라는 마음으로 여기서 유명하다는 중국식당 Sofia Restaurant Chino 를 찾았고 다행히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하고 있어 바로 들러 볶음밥과 옥수수스프, 새우버섯볶음, 맥주를 시켜 홀린듯이 먹어치웠다. 짜고 달았지만 홀린듯 먹어치웠고 생맥주는 정말 맛있었다. 얼마나 걷는게 힘들었으면 맥주 한모금에 바로 취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가격은 30.20유로 결구 싸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오랜만에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다리를 건너 알베르게로 가는데.. 태양에 비친 강이 어찌나 반짝이던지..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특히 건물 뒤에 자리잡은 붉은토로 만들어진 산이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오늘 걸어올때 이 도시 왼쪽편 산들에는 빙하가 가득하던데 또 우측 산들은 붉은토로 뒤덮힌 산이고..  지형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스페인 리오하 지역이다.

 

 

 

 

 

 

역시나 마을 한가운데 플라자(광장)에는 교회가 자리잡고 있고, 여기는 특색있게 얼굴이 뚫려진 사진스팟도 있었다. 나도 찍고 싶었는데, 도무지 삼각대를 내릴 힘이 없어 패스하고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작고 귀여운 곳이었다.

 

 

 

 

 

 

 

 

사실 이곳 나헤라에도 공립알베르게가 있는데, 무려 최소금액 6유로만 내면 되는 도네이션으로 운영된다. 그치만 예전 베드버그가 나왔었다는 후문이 있었고 또 지나가는 길에 다수 순례자들의 행색을 보니 아무래도 후각과 청각이 많이 힘들거 같아 오는 중간에 이곳에 예약 메일을 보냈고 다행히 답변이 와서 13유로를 주고 체크인했다. 참고로 아침식사 포함은 17유로인데, 중식당에서 남은 볶음밥을 포장해와서 아침은 신청하지 않았다.

 

 

 

 

 

 

도착하니 독일인 여자친구가 한명있었고 중간에서 시작해 반대방향으로 팜플로냐까지 간다고 했던거 같은데, 발음을 잘 못알아들어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다만 씻고 커피한잔 마시고 있으니 마을 구경한다고 나가서 지금 7시까지 돌아오지 않은 상태이다. 이곳 알베르게에 한국인이 많이 다녀갔는지 후기 종이가 많이 붙어 있었고, 곧이어 한국인 아저씨 아주머니 커플이 체크인을 하셨다. 중식당에서 나오면서 본 분들인데 프라이빗룸 예약에 실패하신듯 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까미노의 11일차 29k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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