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숙소찾아 떠난 30km 첫번째 위기 봉착
[ 2025. 01. 24. (금) ]
Day 7 : Estella - Torres del Rio (30km, 8h)
어제 몇시쯤 잠에 들었을까..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두번째 눈을 떠보니 새벽 6시가 넘었다. 주변의 움직임 소리를 보아하니 다들 일어나 짐을 싸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나도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와서 키친에 다정이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니 마지막 친구도 일어나 짐을 싸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가 불을 켜서 침낭을 정리하고 가방을 쌓다.
7시 15분쯤 키친으로 와서 커피한잔을 내린 후 자판기에서 빵 하나와 오렌지주스 하나를 각 1유로에 구매해 배를 채우고 7시 30분이 넘어서 7일차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조금 늦어서일까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학교로 가는 친구들이 가득했고 적당히 활기차보이는 시간이었다. 그래 나도 고등학교때는 8시까지 등교를 했으니까, 아무렴 스페인 친구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마을 어귀를 거의 다 빠져나왔을 무렵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다만 겨울 우기시즌인 스페인에서 하늘은 7일 계속 구름으로 뒤덮혀있었고 다만 서서히 밝아오는 보랏빛의 색감으로 해가 뜨는구나를 짐작케 했다.
에스테야(Estella)를 살짝 벗어났을까 또다른 공립 알베르게가 언덕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귀여운 벽화가 그려진 이 곳은 닫혀있었지만 아마도 한적한 곳에 있어 성수기때 오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을을 빠져나와 산길로 들어서는데 역시나 보이는 성당, 그 모습이 예뻐서 삼각대를 내려 사진을 한장 찍었다. 늘 사진은 처음 시작지점에서 찍어놔야 하는데 나중에는 피곤해서 아니 계속된 풍경에 지쳐 삼각대를 내려놓을 체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나 처음 여기서 사진을 찍고 이후 삼각대는 그냥 내 어깨룰 누르는 짐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 길 바로 우측에 100km 라는 표식과 함께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를 표기한 대문이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곳이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대장간이었다고 한다. 흠,.. 나도 여기서 가리비 모양의 기념 목걸이를 사고 싶었는데.. 겨울비수기 순례길의 아쉬운 가장 아쉬운 순간이다.
그렇게 성당이 있는 곳으로 오르고 오르니 우측편에 내가 두번째로 보고 싶었던 이라체 와인이 있었다.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와인을 나눠준다는 이곳에서 혹시나 와인이 있을까 수도꼭지를 내렸는데, 콸콸콸 하고 와인이 나왔다. 아주 신이났다. 일찍간 다정이는 와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는 오늘 럭키비키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와인을 가득 담아 마시면서 오늘 까미노를 걸었다.
마시고 싶었던 이라체 와인도 챙기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고, 드디어 멀리서부터 위엄을 뽑내던 성당도 보았다. 처음에는 보이는 성당마다 그 모습에 감탄하곤 했는데 마을마다, 그리고 지나가는 주요 위치마다 자리잡고 있는 이 구조물을 보면서.. 감탄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성당을 지날쯔음 어머니 2분이 이 길을 지나가더니 엄청난 속도로 사라져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까미노 방향 왼편에 자리한 돌산은 처음에 구름에 휩쌓여 있더니 이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넓은 평원에 우뚝 솟아있는 돌산, 저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을지 트레일이 있을지 새삼 궁금했다.
지나가는 길에서 주인과 산책하는 다양한 강아지를 만났고,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도 만났는데.. 까미노를 걷는 사람은 못만났네 ㅎㅎㅎㅎ 다들 같은 방향으로 걸어서 그런지 내가 따라잡거나 나를 따라잡지 않는한 만날 길이 없다.
그리고 에스떼야 이후 만난 첫번째 마을.. Azqueta 인거 같은데... 마음속으로 식당이나 바가 열려있으면 하고 바랐지만 다른 곳과 동일하게 이 시간 문을 연 가게는 한곳도 없었으며 심지어 길바닥에 지나가는 사람 또한 없었다. 다만 같은 알베르게에서 투숙했던 남자친구 한 명만이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2일째 보는 그 친구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왜 물어보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 내내 그 친구를 만났는데 용기내 물어보지 않은게 후회된다.
그렇게 꽁꽁 닫혀있는 마을을 지나 드넓은 평원과 포도밭길을 걸어가는데, 중간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싶었다. 아침부터 와인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그 여파가 실로 엄청났다. 사실 이전 마을에서 식당이나 바를 그렇게 찾은 이유가 바로 화장실 때문이기도 한데.. 휴..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이곳 까미노에서 노상방뇨를 했고 당연 휴지는 내가 챙겨왔다.
오늘의 까미노는 업 앤 다운 없이 매우 순조롭게 평평한 길을 가고 또 갔다. 양옆으로 펼쳐진 초록색 평원, 그리고 드문드문 마주치는 포도밭, 길쭉이 나무들... 그러다 처음으로 억새를 발견하고는 바람에 흩날리는 그 모습이 예뻐서 한동안 쳐다본다.
에스떼야에서 20km 지점인 로스 아르코스(Los Arcos)는 생각보다 멀었다. 드넓은 평원을 걷고 또 걷고... 배가 너무 고픈데 마을은 좀처럼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1시가 넘어서야 저 멀리 성당이 보이기 시작했고 저기가 로스 아르코스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로스 아르코스에서 1박을 하려고 했으나, 오픈한 알베르게가 없었다. 왜 그런지 알겠는게 처음 들어가자마자 길바닥에 돌다니는 수탉이 나를 반기고 닭, 오리, 염소들이 보였다. 아주 작은 마을인거 같았다. 그래도 문을 연 식당을 찾기 위해 골목골목을 돌아다닌 결과 플라자로 보이는 광장 바로 앞에 바 하나가 활개를 치고 있었다. 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이 곳에 와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역시 1시에는 바 하나쯤은 열려 있어야 그게 사람 사는 곳이 맞지..
그래서 나도 여기 야외 테이블에서 샌드위치와 올리브 정어리 꽂이 그리고 카페 콘 레체로 배를 채우고 오늘의 목표인 토레스 델 리오로 향했다. 발이 너무 아팠다. 역시 20km 이상은 무리인가.. 함께 출발한 서양 남자는 이곳에서 문열은 알베르게를 찾는 듯 했고, 나와 다정이는 여기서 8km 떨어진 토레스 델 리오 숙소에 예약해놓았다고 했다.
그렇게 무거운 다리와 불나는 발바닥을 이끌고 다시 다음 마을로 향했다. 다음 마을은 산솔(Sansol)이라는 곳이고 그 곳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오늘의 목적지인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가 나온다. 저 멀리 산솔 마을의 성당이 크게 보였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3시가 넘어가니 마을 방향으로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해는 하늘에 아직 떠 있는데 그쪽 방향의 하늘만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아마도 내가 서쪽 방향으로 계속 걷고 있기 때문에 그런건지도 모른다.
어느덧 4시 가까이 되었을까, 산솔마을에 도착했다. 이곳도 아주 조용한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사람없는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나는 이 마을을 통과하지 않고 둘러서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토레스 델 리오로 다리를 건너가기 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움직여 걸었던거 같다. 그렇게 산솔 마을을 둘러가니 강 건너편에 아주 예쁜 마을 하나가 바로 붙어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저기구나...
그렇게 나는 토레스 델 리오 마을에 도착했고, 바로 예약한 숙소를 찾았다. 미리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30유로 짜리 알베르게로 아마도 오늘 투숙객은 다정이와 나 둘뿐이리라.. 숙소 이름은 < La Pata de Oca Hostal Rural y Algergue > 건물 외곽에 아주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그렇게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고, 12개 침대가 있는 큰 방 제일 안쪽 침대에 짐을 풀었다. 오늘은 다행히 허리를 펼 수 있는 단층짜리 침대라서 행복했다. 저녁은 15유로라고 하기에 미리 예약을 했고 조금 있으니 이탈리아 언니가 들어왔다.
40km 상당을 팜플로냐에서 걸어왔다고 하는데.. 포스가 대단했다. 저녁을 같이 먹게 되어 이리저리 얘기를 나눴는데 내일 어디갈지조차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왔다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게 목표라고 한다. 이번이 첫 까미노고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왔다는데.. 아무튼 나도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을 좀 해야지 하면서도 걷는 내내 힘들어서 걷는거 이외에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걷고 배고프고 자는 단순한 삶이 지금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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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ata de Oca Hostal Rural y Albergue, 토레스 델 리오, 스페인
토레스 델 리오에 자리한 La Pata de Oca Hostal Rural y Albergue에서 머물러보세요. 숙소는 야외 수영장, 정원, 공용 라운지, 테라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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